얼마나 일해서 얼마나 벌어야 행복할까
프리랜서 디지털 노마드로서 클라이언트에게 첫 제안을 받았을 때를 돌이켜 보면 설레고 신나기보다 두렵고 막막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분명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계획이 서는데, 과연 이것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일이며 하루 중 몇 시간을 이 일에 투자해야 하고, 얼마만큼의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경험과 정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는 첫 계약서를 엉뚱하게 작성하고 말았습니다. 지방에 있는 웨딩컨벤션 업체의 온라인 마케팅 일이었는데 '어떻게든 이 일을 따내야 한다는 생각' 간절함에 터무니없는 조건과 가격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제가 적어낸 금액은 일반 온라인 마케팅 업체가 제시한 견적 금액의 1/6 수준이었고, 만약 결과물이 기대보다 조금 아쉽더라도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 여길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의 저는 막 회사를 떠나 야생에 나온 상태라 물과 불을 가리지 않고 계약을 성사시키는데 주력했고, 더욱이 클라이언트와 연결된 계기가 지인의 소개였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 아쉬운 계약이었지만 맡은 바 업무에 열정과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국 최초에 계획했던 것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며 계약 기간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첫 프리랜싱은 해피엔딩?
그러나 아름다운 결과와는 달리, 일하는 동안 아주 가끔씩 찜찜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프리랜서로서 맡은 첫 일이었고, '배우는 마음으로 하자'던 생각과는 다르게 '돈'과 '시간' 그리고 '가치'에 대한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감사했던 첫 클라이언트와의 계약기간이 모두 끝난 후 '다시는 후회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저만의 공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공식을 활용한 결과 조금씩 더 나은 조건으로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한 달에 얼마를 벌어야 행복할까?
가장 먼저 기준으로 삼은 것은 '한 달에 얼마를 벌어야 행복할(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와 프리랜서로 일할 때, 사무실에 앉아 일할 때와 원격 근무를 할 때에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가치는 수입입니다. 수입은 정말 중요합니다. 저부터도 늘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언제나 2등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 동시에 저축도 하고 효도도 하려면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며 안정적인 수익은 분명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제가 처음 프리랜서가 되어 목표 수입으로 삼은 것은 200만 원이었습니다. 아직 프리랜서로서 별다른 포트폴리오가 없는 20대 중후반의 청년으로서는 비교적 현실적인 목표치였는데요. 하지만 첫 계약을 엉뚱하게 하면서 하나의 클라이언트만으로는 목표치를 채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고는 해도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새로운 일과 클라이언트를 찾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이 우선인 회사에서보다 재미와 보람을 느꼈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에 집중해야 하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나는 한 달에 얼마나 일하고 싶은가?
제가 고려하는 두 번째 기준은 '과연 내가 하루에 얼마의 시간 동안 일하고 싶은가?'입니다. 1일 노동 시간을 정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디지털 노마드들에게 삶과 여행 그리고 일과 여행의 밸런스를 위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유명한 책 제목처럼 '4시간'만 일하겠다고 선언해도, 그 두 배인 8시간을 일하기로 마음먹어도 괜찮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 기준을 직접 정하는 것입니다.
노동 시간은 수입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적은 시간을 일하는 것이 오래 일하는 것보다 수입이 적지만 프리랜서, 혹은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려고 마음먹은 이들이라면 흔히 말하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에도 관심이 많을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수입이 절대적인 행복의 기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시간과 돈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루에 4시간씩만 일하고 150만 원을 버는 일과, 하루에 8시간씩 일하고 250만 원을 버는 일 중에서 여러분은 어떤 것을 선택하실 건가요?
일의 난이도와 가치는 얼마나 되는가?
마지막으로 고려할 기준은 내가 할 일이 '어떤 난이도를 가지고 있으며(어떤 능력을 요구하며),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일인가?'입니다. 이 두 가지 항목은 앞서 이야기한 희망 급여와 희망 근로 시간에 커다란 변수로 작용합니다.
프리랜서 디지털 노마드로 일하다 보면 난이도도 어렵고 보상도 적지만 흥미가 느껴지거나 커리어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의미가 있는 일이라 과감하게 일을 떠맡을 때가 있고, 이와는 반대로 전혀 관심에 없던 일이라도 금전적인 보상이 크게 주어지는 일이라 떠맡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재미는 없지만 보상이 큰 일을 하면서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가치'입니다. 한 달에 얼마를 벌고 싶고, 또 얼마나 일하고 싶은지와는 별개의 문제로 그 일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중요합니다. 때로는 돈을 전혀 받지 않더라도 해보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해 9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2017 홈리스 월드컵에 대한민국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참가했습니다.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주 3회(각 4시간) 훈련에서 골키퍼 코치를 맡았고, 오슬로 현지에 가서는 골키퍼 코치 외에 경기 사진을 촬영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작가의 임무를 수행하는 바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금전적인 보상은 월세 정도로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꺼이 이 일을 맡았습니다. 국가대표 축구팀의 일원이 되고 싶었던 오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였고, '축구'를 키워드로 책을 출판한 작가로서 여러 모로 의미가 있는 이벤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기에 마음 편히 월드컵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요.
노마드의 행복 공식
앞서 이야기한 기준 항목들을 종합하면
(희망 수입/희망 근로시간) X 업무의 난이도 X 업무의 가치 = 시간당 임금
이라는 공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만약 프리랜서 디지털 노마드 A 씨가 목표로 삼은 월수입이 300만 원 정도이며 희망하는 월 노동 시간이 100시간이라면,
-> A가 행복하기 위한 시간당 최소 임금은 3만 원(300만 원/100시간)
여기에 업무의 난이도(ex : 쉬움 = X1, 어려움 = X2, 지옥 = X5) 업무에 대한 흥미(ex : 흥미가 있다 = X1, 흥미는 없지만 목표 수입을 위해 = X1.5)와 가치 등의 변수를 곱하면 최종적인 시간당 임금을 책정할 수 있는데요.
-> 업무 난이도가 어렵고 흥미는 없지만 목표 수입을 위해 하는 일이라면 변수는 3(2X1.5)
-> 시간당 최소 임금 3만 원에 변수 3을 곱하면 최종 시간당 임금은 9만 원!
만약 내가 맡게 될 일이 매일 네 시간 정도를 투자해야 하는 일이라면 시간당 임금 9만 원에 4를 곱하면 되고 클라이언트가 제시한 보상이 내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합리적인지(일을 맡아 놓고 후회하지 않을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이 예상하시는 것처럼 실제 상황에서는 더 많은 변수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얼마나 일해서 얼마나 벌고 싶은지, 그리고 스스로의 가치를 매겨둔다면 덜 고생하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시간에 얼마를 버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프리랜서와 디지털 노마드들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돈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자신이 일하는 공간과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은 결국 이러한 선택의 자유를 지속하게 만드는 수단에 불과하고요. 그래서 행복한 노마드가 되기 위해 우리 모두 조금은 로맨티시스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