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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영준 Nov 15. 2020

글쓰기법칙

40_감정어를 피하세요.

기본적으로 모든 글의 목적은 설득說得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은 본질적으로 상대방의 태도나 행동에 상호 간 호혜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모든 문장이 그렇습니다. 글을 읽는 상대방을 설득해 그로 하여금 글쓴이의 마음에 동조同調하게 만드는 것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보도자료는 기자記者로 하여금 기사記事로 쓰고 싶어 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보도자료는 기사로 되었을 때 독자의 관심을 끌만한 것이라야 하죠. 궁극적으로 보도자료는 일반 독자 입장에서도 가치 있는 것이라야 합니다. ‘A기업이 창사 5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라거나 ‘B기업이 해외바이어를 대상으로 워크숍을 열었다.’라는 것은 아무런 관심거리도 못 됩니다. 기자도 그런 것에는 조금도 관심 없다. 

     

내용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고, 작성자의 입장에서 기사 한 줄 내기를 바라는 마음만 강하게 드러나는 보도자료도 많습니다. 욕망만 있고 스토리는 없는 글입니다. 내용이 부실하면 글에 장식裝飾이 많아집니다. 기자는 그런 보도자료에 익숙합니다. 기자는 알맹이 없이 빙빙 돌리고 듣기 좋은 말과 수식어만 잔뜩 처바른 부실한 보도자료를 귀신처럼 찾아내 쓰레기통에 던져버립니다. 매력적인 내용이 없다면 보도자료를 쓰지 않는 게 낫습니다. 문장을 온갖 수식어로 화려하게 치장하더라도 내용이 부실한 보도자료는 속없이 겉만 잔뜩 부풀어 오른 공갈빵과 같으니까요.


나는 감정만 잔뜩 드러나는 수식어를 ‘감정어感情語’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감정어는 관객은 냉랭한데 혼자서 기분 좋아 웃어대는 무능한 개그맨입니다. 감정어를 남발하면 독자는 더 흥미를 잃습니다.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 신도심 지역에 있는 초고층 빌딩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를 처음 본 세 명의 작가가 다음 문장을 썼다고 합시다. 어떤 문장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1) 부르즈 할리파는 아랍에미레이트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부르즈’는 아랍어로 ‘탑塔’이라는 뜻이다. 처음 이 건물을 보았을 때 나는 열린 입을 도저히 다물 수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엄청난 높이 때문이었다. 부르즈 할리파는 내가 보아 온 어떤 건물보다도 높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서울 여의도에 있는 63 빌딩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높았다. 아래서 올려다보면 꼭대기가 아득히 멀어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높이였다.      

(2) 부르즈 할리파는 아랍에미레이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건물이다. ‘할리파의 탑塔’이라는 뜻인 이 건물은 높이가 829.8미터나 된다. 타이베이에 있는 ‘타이베이 101’이나 서울의 ‘63 빌딩’보다도 훨씬 높다. 이 건물은 높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내부 공간도 무척이나 커서 지하 2층부터 지상 163층까지 사이에 전망대와 오피스, 거주공간居住空簡과 상업공간이 있다. 이 건물에는 기계실만 일곱 개 층을 차지하고 있다. 건물의 규모가 말만 들어서는 상상도 되지 않을 정도다.     


첫 번째 문장은 ‘부르즈 할리파’에 대한 작가의 감탄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건물이 높다고 말하면서도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인 수치를 말하지 않습니다. 정보는 주지 않고 감탄만 잔뜩 늘어놓고 있죠. 독자는 작가의 감정에 관심이 없습니다. 감탄을 할지 말지는 독자가 읽어보고 판단할 일이니까요. 강요받는다고 감탄하는 독자는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은 강요받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작가가 자기가 감탄한 것처럼 독자도 감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글은 독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볼드로 표시한 것처럼 ‘감정어’가 너절하게 즐비하면 독자는 쉽게 피로감을 몰고 옵니다. 

     

두 번째 문장에도 감탄어가 여럿 붙어있지만 데이터를 함께 제시하고 합니다. 숫자가 나오니 그나마 신뢰할만한 글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숫자는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적인 처방입니다. (높이를 ‘829.8미터’라고 소수점 아래 한 자리까지 표기했습니다. 유효숫자 개념을 알고 있는 이과 출신 작가의 센스가 돋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볼드로 표시한 것처럼 ‘감정어’가 여럿 눈에 거슬립니다. 그래서 문장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3) ‘할리파의 탑塔’이라는 뜻의 ‘부르즈 할리파’는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 있다. 이 건물은 지하 2층 지상 163층, 829.8로 고층건물 순위 두 번째인 ‘도쿄 스카이트리(634미터)’보다도 훨씬 높다. 우리나라 ‘63 빌딩’은 264미터니 비교가 안 된다. 부르즈 할리파를 지은 초고강도 콘크리트는 삼성전자가 개발했다. 건물에는 기계실이 총 7개 층 있는데, 초고층 건물에 원활한 인프라 제공을 고려한 것이다. 기계실은 유사시에 격납 대피공간으로도 활용될 정도로 견고하게 지었다.     


세 번째 문장은 ‘감정어’를 극도로 절제했습니다. 대신 팩트를 더 많이 넣었습니다. 앞서의 두 문장과 길이는 거의 비슷한데 포함된 정보의 양이 훨씬 많습니다. ‘감정어’를 남발한 글은 산만하죠. ‘지나친 감정 소모’는 감동이 아니라 피로감만 가중시킵니다. 현명한 작가는 ‘화려한’ 미사여구를 쓸 공간을 ‘팩트’로 채웁니다. ‘주장’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정보’를 채우죠. 독자의 판단은 글 속에 들어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합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 필요한 테크닉은 제한적입니다. 글쓰기 테크닉 한 가지를 더 배우기 위해 작문교실을 기웃거릴 시간에 더 많이 취재하고, 더 많은 정보를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잘 쓸 수 있습니다. 보도자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자 시절, 내용 없이 화려한 보도자료를 들여다보는 것은 정말로 고역苦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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