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학생들로부터 이런 감사를 받을 때면 '내가 그렇게 비쳤다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나의 어떤 모습이 그렇게 비쳤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과연 나는 지금까지 그런 어른을 몇 번이나 겪어 봤지?'라는 자문도 하게 된다.
'좋은 어른'은 어떤 어른일까?
내 기억 속에 '좋은 어른'은 단 두 명뿐이다.
한 분은 심적인 방황의 기로마다 두 팔 벌려 무한 용기를 주던 나의 삼촌이고,
다른 한 분은 미성숙한 사회화로 회사 안에서 변화무쌍하게 사고를 치던 나를 기꺼이 대변해주고, 어떨 때는 대신해서 싸워주기까지 하던 나의 첫 팀장님이다.
두 분의 공통점이라면
-당신들보다 한참 어린 사람의 고민도 항상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들어주었고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현명한 해결책을 제시해 줬으며
-그러면서도 동갑 친구라고 생각될 정도로 편안한 농담을 언제든지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저 두 분을 자연스럽게 미러링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어른'은
대화를 함에 있어 자신의 출생 연도나 - 나이는 공평하게 드는 것이므로 결코 자랑이 아님에도 -
사회경제적인 위치-이 또한 나이 어린 사람도 자연스럽게 취득하게 되는 것임에도- 를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어떤 주제건 공평한 분량으로 생각을 공유하고, 그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할 수 있지만
결코 일방적으로 훈계하거나, 가르침을 주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세상 사는 이야기를 물 흐르는 대로 나누면서 어느 순간 어린 사람 스스로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거들뿐이다.
그런데 살면서 그런 어른을 만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음에는 확실하다.
결코 짧지 않은 내 인생에도 고작 두 명뿐이니 말이다.
오히려 '그저 그런 어른'들에 대한 기억은 차고도 넘친다. 책임에서 도망치는 어른, 약자에 대한 무시와 무례를 특권 삼은 어른, 젊은이의 미래를 속단하는 어른, 차별하는 어른, 아무 생각이 없는 어른, 주변을 돌보지 않는 어른... 끝도 없이 많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들 모두가 나의 '반면교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본격적인 어른이 되기 전부터 '어른이 되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수칙'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선생님처럼 좋은 어른'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그런 신념에 대해 보상을 받은 것만 같아 기분이 좋다.
그런 면에서 나는 '어른'을 단순히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정의에서 다음과 같이 새로운 정의로 규정하고 싶다.
'어른' 이란
'무언가 한 가지라도 배울 점이 있는 사람'
'좋은 어른' 이란
'어른 중에서도 스스로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기꺼이 가질 수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