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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Aug 13. 2020

루머의 루머의 루머

타인의 인생을 함부로 속단하지 않기

넷플릭스의 화제작 '루머의 루머의 루머'라는 드라마는'뜬소문'으로 시작한 '소문'이 또 다른 '뜬소문'을 만들다가, 그로 인해 주인공이 돌이킬 수 없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그만큼 '소문'은 누구에게나 치명적인 칼끝이 될 수 있는 만큼 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소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분명하다. 


첫째, 우선 '들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둘째, '들은 이야기'에 '새로운 추측'이 더해진다.  

셋째, '그 추측'이 '사실'이 되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느 순간 '들은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는 당사자가 된다면 상대의 문장에서 반드시 걷어내야 할 표현이 있다.  


'그래서 ~한 게 아닐까요?' 

이게 바로 '뜬소문'이 시작되는 악마의 문장이다.  


예를 들어보면 이해가 쉽다.  

A. "오늘 팀장님 기분이 안 좋대" 

B. "아, 그래? 왜 그러실까?"

A. "공복이라 그런 거 아닐까? 아니면 월요일 아침이라 피곤해서?"

B. "아,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어제 응원하는 야구팀이 져서 그런 것 같은데??"

A. "아, 맞네~~ 그렇네!"  

우리가 직장에서 동료와 흔히 주고받는 짧은 대화에서도 '팀장'이라는 사람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이 만들어졌다.  




'말'이 무서운 이유다.  

그래서 다른 이의 '말'을 그것도 '말'로 전달하는 것에는 항상 높은 수준의 경각심이 필요하다.  

녹음기를 갖다 대고 그대로 틀어 주지 않는 이상 원화자가 의도하고자 한 바를 100% 완벽하게 복붙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장, 축소, 축약, 생략, 확대의 과정과 전달하는 이의 '감정'과 같은 비언어적인 요소들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another story'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우리가 겪는 크고 작은 곤란함의 시작은 그러한 이야기가 '기정 사실화' 될 때에 있다. 

번거롭다는 이유로 이야기의 팩트체크를 거치지 않게 되면 말은 끊임없는 재창조의 과정을 거듭하다 애초 동그라미였던 이야기가 어느새 육각형이 되어버리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루머를 최소화하는 가장 좋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면  하나는, 내 선에서 '루머'를 멈추는 것이다.

물론 이미 루머가 시작이 되었다면 다단계 조직처럼 확산되는 것은 삽시간일 테지만 적어도 나까지 타인의 불행에 일조(?)하는 일은 막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검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안타깝게도 활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구태여 내가 관여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 셜록홈스처럼 파고들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알지만 그것이 확산되는 데에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언젠가

'나' 또는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도 형편없는 루머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면 -결코 안되라는 법은 없으니까- 우리가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해서도 옮겨서도 안 되는 이유에 즉각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 이야기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있을 만큼의 파급력을 가진 내용이라면 더더욱..) 


모르긴 몰라도..

우리 모두는 각자가 무심코 만들어내는 '루머'의 양만큼 본인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 이미 기가 막힌 '루머'의 당사자 인지도 모른다. (소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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