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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Sep 11. 2020

어떻게 네 말만 하니?

인간탐구영역 - 귀가 두 개고 입이 하나인 이유를 알려줄게  

모든 화두가 '본인 이야기'로 귀결되는 사람이 있다.
 
관심이 가지 않는 이야기에 강제 동원당하는 느낌 때문에 그런 사람과의 대화는 단 10분이라도 피곤하다.
더 큰 고역은 '네 이야기에 경청하고 있어.. 봐봐, 이렇게 집중하고 있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고개를 적당한 템포로 끄덕이고 또 그에 걸맞은 추임새까지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맞아요!" "그러니까요!" "왜 아니겠어요?" "대단하세요~" "저라면 그렇게 생각 못했을 거예요" "주변 분들은 좋으시겠어요~" "어쩜 그렇게 센스가 있으세요?" "우와~ 다음에는 저도 한 번 가고 싶어요~"
 
그럴 때 내 머릿속은 상대의 이야기를 그저 '입력값'으로 인식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출력 값'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주하다.
 



나라는 사람은 평소 '궁금한 이야기Y', '제보자들', '세상에 이런 일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애청할 정도로 타인의 흥미로운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주말에 남자 친구와 영화 봤어요"라는 동료가 건넨 한 마디에 "어떤 영화를 봤어? 어디서 봤어? 평점은 얼마나 줄 것 같아? 어떤 면이 특히 재밌었어? 특별히 안 좋았던 점은 뭐야? 남자 친구도 같은 의견이야?"와 같이 호기심어린 질문을 수도 없이 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의 '일방적'인 대화는 견디기 쉽지 않다.


 
"제 지인이 최근에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하네요"


"그래? 나도 내 지인 중에 유튜브 하는 사람이 있어. 그 친구가 나 대학교 때부터 친구인데 그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뭘 찍는 걸 좋아했어. 그러더니 어느 날 사진작가가 돼서 갤러리에서 사진전도 열었거든? 그러더니 언제는 잡지사 기자로 들어간 거야. 그래서 영화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그게 또 반응이 좋았대나 봐~ 그게 벌써 한 2년... 3년? 전쯤 될 거야.  그렇게 뭐 찍고, 글 쓰고 하더니 그런 주제로 유튜브를 개설한 거지."
 
"아,, 네... 친구분 대단하시네요.."
 
"그 친구 채널 보여줄까? 한 번 봐봐.. 이거야"
 

 
"오랜만이시네요~ 잘 지내세요?"
 


"어~그래 반갑다. 잘 지내지. 얼마 전에는 필라테스를 시작했어. 그런데 강사가 나보고 필라테스에 소질이 있다는 거야~ 처음부터 이렇게 자세가 곧고 고난도 동작을 척척 해내는 초보가 잘 없다는 거지~. 그래서 내가 그렇다면 제대로 돈 주고 배워서 강사 과정까지 따 볼까? 싶더라고. 뭐 시간도 많고 돈도 있으니까 맘만 먹으면 금방 할 수 있겠더라고. "
 
"아.. 와... 진짜 대단하세요.."
 
"그래~ 언제 한번 보자. 잘 가~"



"대학원 진학을 고려 중에 있어요"


 
"아 그래? 잘 생각했네. 나도 대학원 다닐 때 회사 생활하면서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거든. 그래도 악착같이 해서 휴학 한 번을 하지 않고 졸업했잖아. 그때 동기들 중에 그렇게 스트레이트로 졸업한 사람이 내가 유일하다고 하더라고. 과 사무실에서도 대단하다고 하더라고.. 근데 바쁜 일 때문에 졸업식을 못 가서 아직 졸업장을 못 받았는데 그거 빨리 받아야 하는데.."
 
"아.. 그러시군요.. 대단하세요"
 
(또 피곤해진다.....)

 



가끔은 대화의 주제를 막론하고 결국 본인 이야기로 연결시킬 수 있는 그 능력에 감탄할 때도 있다.
 
'대화'는 '경청과 공감'을 전제로 한 '쌍방향 소통'이다.

귀가 두 개고 입이 하나인 이유가 말하는 것의 두 배만큼 들어야 하기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 있다.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꽤 그럴듯한 논리라고 생각한다.
 
'네 이야기에 내가 이미 충분히 경청했으니 이젠 내 차례야... 너도 나에 대해서 궁금해해 줄래?'라는 무언의 신호를, 암묵적인 대화의 룰을 결국 아는 사람만 계속 지켜야 하는 것일까?
   
그런 '일방적'인 대화 이후에 "이 모임, 정말 재밌어~"라는 후기를 남기는 걸 보면 적어도 상대의 기준에서 나는 최고의 대화 상대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격하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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