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피 값'으로 용돈 지출을 가장 많이 한다. 커피 중독자 내지는 바리스타 준비생이라서? 아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일일 최소 2 커피 이상은 꾸준히 복용(?) 해 오고 있지만 여전히 이디오피아산이니 케냐산이니 하는 국민 원두 맛 구분도 하지 못하는 커린이에 불과하다.
그런 내가 커피값을 왜 그렇게 많이 지출하는가 하면 '커피값 = 관계 형성'에 대한 나름의 철학 때문이다.
커피 한잔 할까?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하던 신입사원 시절 주위의 선배 또는 상사가 건넨 "커피 한 잔 하러 가자"라는 제안의 횟수에 비례하여 나는 하루가 다르게 조직 구성원으로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그 말 한마디는 업무 과부하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이견으로 다른 팀원과 업무 충돌이 발생하거나 또는 상사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고 낙담해 있을 때조차 마법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곤 했다. 커피 한잔을 하며 속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다 보면 어느새 문제의 절반 이상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닌 게 돼버리곤 했다.
중간관리자급이 된 이후에는 더더욱 그때의 그 말이 얼마나 나를 아끼는 말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커피 한잔'이 단순히 a cup of coffee 내지는 원두를 갈아 만든 음료가 아니었음을.상대와 공유할 소중한 시간에 대한 남다른 배려인 동시에 상대에 대한 진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말임을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살게요
이것이 바로 내가 커피값을 아끼지 않는 이유이다. 그 커피 한잔에는 상대에게 가지고 있는 나의 진심이 조금이라도 닿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금액으로는 단순히 3~4천 원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내가 살게요!"를 습관적으로 외치게 되는 건 우리 관계가 커피 한잔 이후에 조금이라도 더 발전할 것이라는 데에 가지는 기대감 때문이다.
새로 입사한 부하직원에게, 요즘따라 부쩍 피곤해보이는 동료에게, 반갑게 취업 감사 인사를 오는 학생에게, 전날 저녁 혼자서 초과 근무를 한 또 다른 팀원에게 "커피 한잔 해요~" 라는 말을 하는 것이 내가 수년간 회사 생활을 통해 터득한 관계형성 또는 개선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적은 비용으로 꽤 큰 효과를 거둘 때가 많다.
물론 매번 그런 진심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100% 통하는 법칙은 없으니까..쿨럭) 어떤 사람들은 나의 반복되는 호의를 권리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저 '돈 잘 쓰는 동료'를 우연히 잘 만났다며 내심 쾌재를 부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백 번 중에 단 한 번이라도 서로의 진심이 통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번엔 제가 살게요
"저번에 커피 사주신 거 감사해서 이번엔 제가 살게요"라는 메시지가 전해오는 경우다. 그 한마디면 오랜 기간 누적된 불특정 다수에 대한 서운함이 거짓말처럼 한 순간에 사라진다. 또 한 번의 커피 한 잔으로 상대와 나의 관계가 한 뼘 더 깊어질 것이라는 것에 대한 설렘은 그동안 지출한 수 많은 커피값에 대한 완벽한 보상이 되고도 넘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기대되는 대목은 나의 진심을 알아준 상대와의 두 번째 커피 한 잔이 아마도 앞으로 최소 십 수 번 이상의 또 다른 커피 한잔의 관계를 쌓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내 인생에 또 하나의 따뜻한 관계 폴더가 생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