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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Dec 08. 2020

절교에 익숙해지세요

비생산적인 관계의 멈춤에 대하여


1. 절교의 시작


너랑 우리랑 잘 안 맞는 것 같아


대학시절 친하게 어울려 다니던 여자 친구 세 명으로부터 '강퇴'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것도 같은 수업을 듣던 도중이었다. 노트 모퉁이를 찢은 쪽지에는 '쉬는 시간에 잠깐 보자'라는 휘갈겨 쓴 메모가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랑 우리랑 잘 맞지 않는다'는 것.  


"그래. 알았어"


더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싶었다.  연인도 안 맞으면 헤어지는데 친구라고 다를쏘냐.  '그래도 이왕이면 수업 끝나고 얘기해주지'라는 서운함은 애써 숨겼다.  22살의 자존심이 많이 다쳤다.  그렇게 꽤 쿨한 대답을 내놓고는 그 길로 바로 연락처를 지웠고, 오가다 마주쳐도 눈인사조차 하지 않는 완벽한 타인이 되었다.  


이것이 내 인생 첫 공식화된 절교 (당한) 경험이었다.  


2. 아군도 적군도 아닌 관계


사회인이 된 후에는 더 스펙터클한 '관계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처음에 좋았던 관계가 갑자기 틀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몇 년간 서로 이름조차도 몰랐는데 우연찮은 자리를 계기로 절친으로 발전하는가 하면,  처음 보는 상대가 이미 나를 알고 있거나 또는 다른 회사의 사람을 통해 내가 아는 누군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그야말로 맥락이라는 것이 없었다. 뭐랄까.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모르는 사람도 없는 알쏭달쏭한 기분이랄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런 관계 불분명의 회사 내 인간관계의 시작점에는 '어떤 경우에도 적을 만들지 말라'는 불문율이 자리 잡고 있다. 나 역시도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선배나, 상사로부터 귀에 인이 박히도록 같은 종류의 조언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 되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빈번하므로 누구와도 척을 지는 일을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 었다.  


그 말은 '모두와 잘 지낼수록 좋다'라는 말과 묘하게 닮아있는 듯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뜻이었다.  '적을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은 '나빠지지 않는 것'에 주된 목적이 있다면 '잘 지내는 노력'은 당연히 '좋아지는 것'에 지향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나빠지지 않음'에 에너지를 집중한 대부분의 사람겉으로는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필요에 따라 서로를 밀고 당겨주기도 했다.



3. 그 보다는 확실한 내 편 한 명


그런 게 부러웠냐고? NO.

사실  기질에는 전혀 맞지 않는 일이었다.

'친하면 친하고, 안 친하면 안 친한 거지 그런 애매한 게 어딨어?? '

투철한 반골 기질을 탑재한 나라는 인간은 대다수와는 정반대의 길을 무소의 뿔처럼 걸었다.  누구와 적이 되는 것이 두려워  살얼음 위를 걷는듯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누가 진정한 '내 편'이 될 것인가에 집중했다.  10명 중에 설령 9명과 등을 돌린다 해도 확실한 내 편 단 1명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소심한 성격 탓에 환불 요청도 당당하게 못하지만 회사에서 만큼은 필요하다면 상대가 누구라도 부딪히는 일을 피하지는 않았다. 그 결과 나의 진가(?)를 알아봐 준 진정한 '내편'이 생기기도 했지만 반면에 모두가 우려했던 '적'도 생겼다.


솔직히 그런 상황에서 기업 후계자가 아닌 이상 어느 누가 마음이 동요되지 않을 수 있을까.

유리멘탈 보유자로서 사후 걱정이 앞섰다.  '혹시 이직할 때 저 인간이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닐까?', '나중에 저 사람한테 뭔가를 부탁해야 하게 되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수백 번은 더 했더랬다. 어느 날, 그런 고민을 친한 상사에게 털어놓자 그의 대답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네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들과 적이 됐니? 네 가치관에서 그들이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거 아니야? 그렇다면 뭐가 걱정이야?  그렇게 문제가 있는 사람들한테 네가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을 안 만들면 되지.
안 그래?"


명쾌했다.  

나의 고민은 몇 년간 한 번도 입지 않던 낡은 옷을 버리고 며칠 뒤에 '그 옷이 나중에 필요하면 어떡하지?'를 후회하는 것과 같았던 것이다.  


4. 절교의 습관화


나는 절교에 더욱 대범해 지기로 했다.  타인의 평가나 시선이 두려워 비생산적인 인간관계를 연명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의미다.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관계가 아니라면 알고 지낸 기간만 십 수년이라고 해도 과감한 절연을 택했다. 그건 서로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실제로 이런 기준으로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삶을 강요하거나, 내가 하는 일을 존중하지 않거나, 매사에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거나,  받기만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내가 이룬 성취에 대해 폄하하는 사람들과는 꽤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절교해왔다.  물론 유치하게 '선언'따위는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연락 횟수를 줄이며 멀어지거나 혹은  결심이 서면 하루아침에 연락을 끊기도 했다.    

그러자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초래되던 숱한 갈등과 스트레스가 단번에 사라졌다.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더 빨리 헤어질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올 정도였다. 그들 모두 '지인'이라는 알량한 명분으로 오랜 시간 내 영혼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을 뿐이다.


살면서 만난 숱한 사람들 중, 지금 당장 나의 안부를 물어봐줄 사람이 과연 몇 %나 될지를 생각해보면

사실상 우린  이미,  관계의 맺음보다 끝내는 것에 훨씬 더 익숙해져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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