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그레이 Nov 09. 2020

내가 커피값을 내는 이유

커피값과 진심이 있는 관계의 미학  


나는 '커피 값'으로 용돈 지출을 가장 많이 한다.  커피 중독자 내지는 바리스타 준비생이라서?  아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일일 최소 2 커피 이상은 꾸준히 복용(?) 해 오고 있지만 여전히 이디오피아산이니 케냐산이니 하는 국민 원두 맛 구분도 하지 못하는 커린이에 불과하다.


그런 내가 커피값을 왜 그렇게 많이 지출하는가 하면 '커피값 = 관계 형성'에 대한 나름의 철학 때문이다.




커피 한잔 할까?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하던 신입사원 시절 주위의 선배 또는 상사가 건넨 "커피 한 잔 하러 가자"라는 제안의 횟수에 비례하여 나는 하루가 다르게 조직 구성원으로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그 말 한마디는 업무 과부하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이견으로 다른 팀원과 업무 충돌이 발생하거나 또는 상사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고 낙담해 있을 때조차 마법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곤 했다. 커피 한잔을 하며 속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다 보면 어느새 문제의 절반 이상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닌 게 돼버리곤 했다.  


중간관리자급이 된 이후에는 더더욱 그때의 그 말이 얼마나 나를 아끼는 말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커피 한잔'이 단순히 a cup of coffee 내지는 원두를 갈아 만든 음료가 아니었음을.  상대와 공유할 소중한 시간에 대한 남다른 배려인 동시에 상대에 대한 진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말임을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살게요


이것이 바로 내가 커피값을 아끼지 않는 이유이다.  커피 한잔에는 상대에게 가지고 있는 나의 진심이 조금이라도 닿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금액으로는 단순히 3~4천 원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내가 살게요!"를 습관적으로 외치게 되는 건 우리 관계가 커피 한잔 이후에 조금이라도 더 발전할 것이라는 데에 가지는 기대감 때문이다.  


새로 입사한 부하직원에게, 요즘따라 부쩍 피곤해보이는 동료에게, 반갑게 취업 감사 인사를 오는 학생에게, 전날 저녁 혼자서 초과 근무를 한 또 다른 팀원에게 "커피 한잔 해요~" 라는 말을 하는 것이 내가 수년간 회사 생활을 통해 터득한 관계형성 또는 개선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적은 비용으로 꽤 큰 효과를 거둘 때가 많다.


물론 매번 그런 진심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100% 통하는 법칙은 없으니까..쿨럭)  어떤 사람들은 나의 반복되는 호의를 권리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저 '돈 잘 쓰는 동료'를 우연히 잘 만났다며 내심 쾌재를 부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백 번 중에 단 한 번이라도 서로의 진심이 통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번엔 제가 살게요


"저번에 커피 사주신 거 감사해서 이번엔 제가 살게요"라는 메시지가 전해오는 경우다.  그 한마디면 오랜 기간 누적된 불특정 다수에 대한 서운함이 거짓말처럼 한 순간에 사라진다.  또 한 번의 커피 한 잔으로 상대와 나의 관계가 한 뼘 더 깊어질 것이라는 것에 대한 설렘은 그동안 지출한 수 많은 커피값에 대한 완벽한 보상이 되고도 넘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기대되는 대목은 나의 진심을 알아준 상대와의 두 번째 커피 한 잔이 아마도 앞으로 최소 십 수 번 이상의 또 다른 커피 한잔의 관계를 쌓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내 인생에 또 하나의 따뜻한 관계 폴더가 생성되었다.  



... 그래서 나는 오늘도 커피값을 계산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