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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Dec 18. 2022

20년짜리 가짜 우정

세상에 어떤 친구가 친구를 그렇게 대해?

'그 일'이 있은지 2달 여가 지났다.

'그 일'을 겪은 후 반나절은 길가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패턴화 된 일상에서, 패턴 밖의 일은 때로는 짜릿하지만 때로는 충격이 되기도 한다.

내 쪽은 후자였다.


당시 마음으로는 '그 일'을 겪자마자 브런치에 와서 울분을 토해내고 싶었다.

실제로 그러려고 브런치 화면을 켰다, 껐다를 몇 차례나 반복했다.  

그런데 '빅데이터'시대에 걸맞게(?) 내 안의 경험 데이터로부터 강력한 'STOP'메시지가 왔다.  그렇게 하면 100% 이불 킥 감의 글을 쓰게 될 거라고 경고했다.   

진정이 필요했다.


근 몇 년? 아니 거의 7~8년 만에 심장 박동수가 최고조로 오르고, 손발이 후들거렸다.  이런 상태는 과거 마지막 직장에서의 갑질 상사(브런치 글 : '직장에서 악마를 보았다'편 참조)로부터 겪었던 수모 이후로 처음이었다.


'정말 오래 살다 보니 별 일을 다 겪네..'




유난히도 표현을 세게 하는 B였다.

직설적인 표현으로 타인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곤 했던 나조차도 B앞에서는 늘 '상처받는 쪽'이었다.


나와 B는 지금으로부터 십 수년 전, 대학 동기였던 A를 통해 알게 됐다.

A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뛰어난 친구였다. 사소한 언행은 물론 늘 자신보다 상대의 기분이나 상태를 먼저 의식하고 그에 걸맞은 남다른 배려를 몸소 보여주곤 했다. 나는 그런 A와 오랜 기간 우정을 쌓으며 깊은 인간적인 호감과 신뢰를 가졌다. 그런 면에서 B는 내가 '기대하던' A의 성향과 전혀 맞지 않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직도 기억한다. B가 나를 처음 알게 된 자리에서 했던 말을.


"너랑 나랑은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어. 왜냐면 너는 내가 안 좋아하는 어떤 면을 가지고 있거든"


참 특이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A를 통해 우연찮게 만들어진 술자리였기 때문에 모임이 끝난 이후 따로 관계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될 일이었지만, B로 하여금 나는 생애 처음으로 '요청한 적도 없는 일에 거절당하는 불쾌감'을 경험했다.


이상한 건 그 이후였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런 말을 들은 이후에도 몇 번의 모임 계기가 더 있었고, 그러면서 '절교'선언부터 했던 B와 나는 A에 대한 무한 신뢰를 완충재 삼아 십 수년간의 만남을 이어오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B와 나는 때가 되면 빠지지 않고 만나서 서로 웃고, 축하해주고, 조언해주고, 위로해 주는 관계가 됐다.  




그런데 그런 지난 십 수년간의 관계에 허점은 있었다.

바로 내 마음이었다.


B와 만나고 온 직후에 나는 평소보다 늘 작아져있었다.

세상 밝은 미소로 찍힌 휴대폰 사진을 보면 누구보다 견고한 우정을 지닌 세 사람처럼 보이지만 본심은 그렇지 않았다.  뭔가 모르게 나는 항상 기분이 언잖았고, 어떨 때는 나의 존재가 비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디서든 쫄지 않고 당당하기만 한 나인데!'


만남이 거듭될수록 그런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마음 편한 사이인 A와만 따로 만날까도 생각했지만 너무 오랜기간 3인 모임이 형성된 탓에 나중에 B가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후폭풍이 두려웠다.


20대로 시작해서 40대가 된 만큼 우정도 그만큼 성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B만큼은 20대 그대로였다.

어엿한 가정을 일구어 살고 있는 두 중년의 친구에게 B는 여전히 중학생이나 할 법한 가볍고 공격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번번이 얼굴이 붉어지고 머리가 핑 도는 아찔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참았던 건, 나는 더 이상 상대의 무의미한 언행에 시시비비를 따질만큼 어리석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나의 성숙함은 B가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있도록 볼모가 되어주었다. 나는 오랜 기간 나에 대한 B의 일방적인 언사와 은근한 경멸을 온몸으로 견뎌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한 가지였다.

일 년에 딱 두 어번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만하자고 하기에는 너무 간헐적이었고, 간헐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반복적인데 있었다.


그러던 두 달 여 전, 마침내 '대 폭발'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어김없는 모임, 어김없는 과격한 언사, 그걸 견뎌내는 A와 나... 루틴이었다.

그런데 B가 드디어 '경계 선'을 넘었다.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발언과 폭력적인 언사가 그것이었다.

B는 내가 결코 독립적이지 않다고 했다. 자기가 오랫동안 보아온 나는 그렇다는 것이다.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독립적 =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이 내가 알고 있는 의미가 맞다면 나는 42살까지 그 누구에게 의존해 본 적이 없었다.  불우했던 가정사로부터, 갑질 상사로부터, 비합리적인 조직과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온 몸으로 저항하며 완벽하게 독립적인 인생을 살아온 나였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만큼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두 엄지를 치켜세웠다.  힘은 들어도 어떻게든 혼자서 그 숱한 곡절을 이겨내며 현재까지 살아내 온 나에게 B의 평가는 경솔했고, 또 완전히 틀린 것이었다.


귀가하는 B의 차 안에서 B는 약 5분 여간 터져나갈 듯이 상기된 얼굴로 차 뚜껑이 떨어져 날아갈 수 있을 만큼의 고함을 무차별적으로 질러댔다.  내가 '나를 독립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다시 한번 물어봤다는 게 '그 이유'였다.  차량이 많은 도로였고, B는 핸들을 쥐고 있었다.  나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나의 질문에 언성이 높아지는 지점부터 대화는 영영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괜찮았다.어차피 B와 나는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으니까.  B는 항상 나를 몰아세웠고, 나는 코너에서 쉽게 항복 선언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차 안에서의 5분은 지난 십 수년간의 패턴과 정 반대였다.  

이번엔 내가 B를 몰아세웠고, B는 (그동안 일방적으로 수용했던 나나 A와는 달리) 격분과 고성으로 화답(?)했다. B는 애당초 내 마음에는 관심도 없었다.  B에게는 오로지 B자신만이 소중했다.


갓길에 급하게 정차한 차에서 도망치듯 내린 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 길로, B를 내 인생에서 완벽하게 도려냈다.


십 수년간의 알 수 없었던 마음의 체증이 비로소 내려갔다.


B가 진짜 친구가 아니라는 걸 깨닫기까지 20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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