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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Dec 12. 2021

그놈의 인맥관리

더이상 밥사고, 차사고 하지 마세요

인생사 참 얄궂다.


뜻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짜증이 올라오다가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뜻한 바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동안의 알량한 '인맥관리'가 하등 부질없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개인 사업자로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는 분야는 단연 '비즈니스 인맥관리'였다.

정의하자면,  과거 혹은 현재 나를 둘러싼 사람들 중에 '나에게 비즈니스 기회를 줄 가능성이 있거나, 높다'라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각별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관리의 방식은 대개 뻔하다. 만나자고 조른 후에 어떤 식으로든 '잘 보이는' 것인데, 이때 보통 '오다 주웠다'식의 소정의 선물을 전달하며 환심을 사거나 미팅의 찻값 및 밥값을 대신 지불함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일종의 '부채의식'을 가지게 만든다.  

이러한 "본심"이 통했던 이유로 상대 역시도 군말 없이 나의 '관리'를 기꺼이, 때로는 무심하게 수용한다.  


문제는 애당초 나라는 인간이 이처럼 겉과 다른 속내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일에 영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10년 간의 영업사원으로서의 사회생활이 유달리 힘들었던 터였고, 또 그래서 사업을 시작하기까지 집요하게 내 머리채를 잡고 결단을 미루게 만들었던 주범이 '영업에 대한 심적 부담'이기도 했다.


하지만 손발이 묶인 조직 구성원으로서 생기 없는 삶을 지속하는 것에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럴 바에는 생계에 대한 부담을 안고서라도 온전히 '자기 것'을 해보는 편이 한 번 사는 인생에 충분히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다시 영업인이 되었다.  


 





그런데 불혹까지 살아 내면서, 단 한 번도 '인맥 파워'를 체감해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그것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만이 가득했다.  과거에 영업사원이었다고 했으면서 무슨 뜬금포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누구나 알만한 기업의 구성원이 갖는 인맥은 별다른 관리가 필요 없는 그저 내 명함을 졸졸 쫒았다니는 부록 같은 것이었다. 나의 영업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닌 내가 속한 기업의 파워에 종속될 뿐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로 업직종을 바꾼 현재의 내게 그 시절의 '황금 인맥'이라 불리던 사람 중에 도움이 되고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다.


어쩌면 10년의 영업 경력이 무색할 정도로, 나로서는 생애 첫 영업 전선에 뛰어든 셈이다.

그런데 '업력 6개월 차의 1인 기업의 대표'는 상대가 솔깃할만한 그 어떤 'title'도 없다. 그래서 더더욱 '맨땅에 헤딩하듯' 영업을 해야 하고 그 첫걸음이 모닥불의 장작과도 역할을 해줄-거라 믿는- '인맥관리'였다.  

 

'먹고사는 일에 자존심이 어딨어?'  


가장 유력한 주변인을 그룹핑하고 그 안에 속한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물심양면 공세를 시작했다.

궁금하지도 않은 안부를 수시로 묻고, 별 일없이 학교에 들러 Tea 타임을 가지고, 명절이라고, 생일이라고, 승진했다고 또는 아쉽게 승진에서 누락됐다고, 요새 좀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등등의  갖은 이유를 붙여가며 선물과 메시지를 보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오랜 기간 '공들였던' 사람은 소위 학교의 실세라고 불리는 과거의 팀장이었다.

'부하직원'으로 일했던 2년 그리고 '지인'으로 지냈던 2년간, 나는 주변 동료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로 그분의 변덕스러운 비위를 남달리 잘 맞춰왔다.  인간적인 호감이나 존경심과는 무관했다. 

100% 솔직하자면 학교에 있거나 혹은 학교와 관련된 일을 하는 이상 '언젠가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확고한 믿음이 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의 다른 동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속내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인사고과에 영향력을 가진 상대의 권력 앞에서 누구도 그 분과의 모임을 면전에서 거절하거나, 피할 수 없었다.  그분을 둘러싼 대부분의 사람들과 나는 마치 끝까지 본심을 숨기는 사람이 최종 우승하는 일종의 게임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문제는 주변의 반복된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과거의 부하 직원이 밥값, 찻값까지 지불하는 상황에서도 그분은 항상 태연했고,  더 놀라운 대목은 그에 대한 일말의 부채의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제안서 한번 가져와봐"는커녕 최소한 "다음에는 내가 살게"의 의례적인 멘트도 하지 않았다.  


'나 그동안 뭐한거늬?' 


뒤늦게 현실을 자각한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영업 대상을 잘 못 골라도 한 참 잘 못 고른 거였다. 





어두운 속내를 들킨 것만 같았다. 

순수하지 못한 마음에 대한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리 상대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고 해도 '진심'이 없이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든 것일까? 


그런데 얄궂게도 '기회'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 싹을 틔었다.


근무 당시, 오가다 인사를 나누거나 업무적인 연락을 주고받은 게 전부인 몇몇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대학과의 비즈니스 물꼬를 터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를 여러 유관부서 관계자들에게 소개해주어 추가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다리가 되어 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동료로서 느꼈던 나에 대한 호의 덕분이었다. 


열심히 물도 주고,  햇볕도 쬐어주고, 때마다 분갈이에 영양제까지 준 화분은 하루아침에 죽어버리고 

정작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던 다른 화분에서 새싹이 올라오는 걸 목격한 심정이랄까. 


이쯤 되니 뭐가 맞는 건지, 그동안 내가 의식적으로 노력해온 건 과연 뭘 위한 건지 당혹스럽다.

할 수만 있다면 진심이 전혀 동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소모한 나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주워 담고 싶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새롭게 기회를 준 그분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결국 진정한 '인맥관리'는 대상을 정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일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 대해 호의를 가지는 사람이 자연히 증가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소모적이지 않으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인맥 관리' 방식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분들'과의 인맥관리를 위해 할 일은 선물을 보내고, 밥을 사고 차를 사는 것이 아닌 그분들이 기꺼이 마련해 준 기회에 대해 뚜렷한 성과로서 '증명'해내는 것뿐이다.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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