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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Jun 10. 2023

취업의 '찐'의미

'어디서'가 아닌 '얼마나 만족'하며 일하는가.  

나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취업 상담과 관련 교육을 업으로 삼고 있다.   


이런 직업이 '필요한' 혹은 더 '필요해진' 이유는 명확하다.  

사회경험과 전문 지식이 부족한 신입사원이 설 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조하지만 '좁아졌다'는 뜻은 이전만큼 많~이 뽑지 않을 뿐 어쨌건 '뽑긴 뽑는다'는 뜻이다. 

(아예 안 뽑으면 내 밥벌이도 사라진다..)  

그만큼 소위 '한 번쯤 이름 들어본 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스펙 평균값이 상당히 높아졌다.


취업한 지 오래~~ 된 분들을 위해 요즘 대학생들이 취업을 준비한다는 것이 어떤 말인지 실감 나게 해 드리겠다.


토익 800 이상, 오픽 IM2 이상, 컴활 1급은 소위 '입장권' 수준이며,

직무 관련 자격증 최소 1~2종 이상, 지원 분야에서의 일 경험(인턴, 프로젝트 등)은 '서류 통과' 정도,

그 이후에도 기업은 인성 검사와 직무적합성 검사를 1~3개월 정도 준비한 후 치러야 하고

공기업은 NCS 필기시험을 최소 3~6개월 이상 (금융공기업은 전공 필기 추가해서 1~2년) 준비해야 한다.


벌써 '헉'소리 나면 안 된다.


이렇게 서류, 필기까지 통과해도 면접전형이 또 만만치가 않다.

이름은 들어봤는가.

'BEI면접, PT면접, 영어면접, 토론면접, 롤플레잉면접, 인바스켓 면접 등'... 이마저도 기업과 산업 특성에 따라 제각각이다 보니 거의 대부분의 유형에 대해서 입사 지원 이전에 미리 준비 돼있지 않으면, 덜컥 면접 날짜가 잡힌 후에 부랴부랴 준비하느라 낭패를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기에 'AI면접'까지 각광을 받고있는터라, 이제는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의 눈에도 들어야 한다.


이러니 취업 준비에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 돼버렸고,

내 역할이 대학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중요해졌다.




나는 학생들 저마다의 취업 준비도, 취업 의지, 목표 직무의 설정 여부, 취업시장에 대한 이해 수준과 지극히 사적인 상황과 고민들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취업 전략 수립과 입사지원 활동을 서포트해주고 있다.  


일련의 모든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목표 직무의 설정'인데, 

이 점이 내가 취업하던 2000년 초반과 비교했을 때 '중요도' 측면에서 가장 크게 달라졌다.


'당연한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고, 목표 없이 취업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도 싶지만, 

그 당시와 가장 다른 점은 '목표'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구체성''전문성'을 요구받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과거만 해도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들이 대다수 진출하는 기획/영업/마케팅 직군,  이공계열 전공자들 대다수가 진출하는 연구/개발/품질/생산 직군이라는 큰 카테고리가 존재했고, 대부분은 유사 직군 안에서 '하나만 걸려라'는 식의 묻지 마 지원서를 남발하곤 했었는데,  이런 상황이 가능했던 배경은 대졸 학력과 직업인으로서의 기초역량(어학, 사무, 태도)을 제외하고는 기업이 신입에게 직무적인 전문성을 특별히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직자들은 '기본기만 있으면 가르치면 된다' 그리고 신입사원 또한 '들어가서 처음부터 배운다'라는 '도제식' 마인드가 장착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기획에 관심이 있다면 마케팅, 상품, 광고, 경영, 연구, 콘텐츠 등에서 우선 분야를 정해야 하고, 유형의 상품이라고 한다면 식음료/뷰티/전자/리빙/패션/도서 등에서 어떤 아이템을 할지 구체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걸 시작으로 관련 분야에서의 '직무전문성'을 재학 기간 동안 꾸준하고, 체계적이며, 다양하게 쌓아야 하기 때문에 취업 목표 설정이 늦을수록, 관련 역량을 쌓는데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 더해 대학생의 본분인 '학업과 학점관리'라는 큰 산마저 버티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 진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여유가 거의 없다.

'To do list'는 쌓여서 넘치고, 그것들을 하나씩 쳐내듯 처리하는 데에만도 숨을 헐떡이다 보니, 

정작 취업 준비도, 학업도 열심히 하는 '목적'이 상실돼 버리는 것이다.


대학은 여기에 한 술 더 뜬다.

단순히 저학년/고학년 혹은 전공별과 같이 학생들을 1차원적으로 '범주화'하여, 허울 좋은 '맞춤형'이라는 수식어 하에 한 해에 수 도 없이 많은 취업 프로그램을 쏟아낸다.  거의 배설에 가까운 수준이다.

대학의 목표는 자명하다.  취업 프로그램 참여자 중 몇 명이 '고용 보험 가입자 명단에 뜨는가'이다.

30~40명이 전체 취업률 1%를 올린다는 명제에만 매달려 취업의 질이 아닌 취업의 건 수를 높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나마도 취업목표가 분명한 학생들은 그중에서 필요한 프로그램을 취사 선택하여 실속을 챙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경험상 압도적 대다수)의 불안과 혼란은 이 지점에서 더욱 가중된다.


선택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바로 눈앞에 '바로 널 위해 준비했어! 골라봐!'라며 유혹하는 프로그램들이 번호표를 뽑고 대기 중이지만 정작 스스로 뭘 하고 싶은지 충분히 고민해보지 않은 학생들에게 그것들은 심리적인 부담만을 더해 줄 뿐이다.


취업 컨설턴트로서 딜레마는 여기서 시작된다.

취업을 '많이' 시킬 것인가. VS 내 철학대로 할 것인가.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나는 내 직업을 단 한 번도 '취업을 시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는 '취업을 돕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취업 컨설턴트'라는 명칭에서 사람들은 쉽게 전자로 내 업의 내용을 규정하고는 하는데, 물론 그런 인식에 대해서 이골은 난 상태이지만 적어도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만이라도 정정하고 싶다.


단언컨대, 취업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를 취업을 시켜줄 만큼 기업체 인맥이 강력한 것도 아니며, 설령 그렇다 해도 그걸로 취업을 시켰다가는 하루아침에 뉴스 1면을 장식하고 말 것이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따라서 내가 하는 일의 개요는 대략 이렇다.


학생들 각자 자신만의 특장점을 찾고, 

그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직무 정보와 취업 경로의 옵션 안에서, 

스스로 충분한 고민과 탐색을 통해서 원하는 목표를 정한 후,  

거기에 필요한 역량을 쌓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뒤,

취업 이후에 해당 분야에서 어떤 비전을 가지고 경력관리를 해야 할지,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함께' 해주는 일이다.  


여기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개인차도 명백히 존재한다.

설령 원하는 분야가 같다고 하더라도, 학생에 따라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방식과 수준, 소요 기간은 무조건 다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누군가에게 6개월이, 누군가에게는 2년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재의 학교는 학생 개별적인 특성과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에는 전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4학년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취업 예정자' 명단에 강제로 이름을 올린다. 

어떤 학생이 최근 심각한 가정사를 겪고 심적인 방황기를 오래 겪었는지, 경제적인 문제로 아르바이트 때문에 제대로 취업에 대해 고민할 여력이 없었는지, 현재 어느 정도의 취업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그들이 졸업 전에 취업률 지표에 반영이 될 수 있는 수준의 취업이라면,  그것이 설령 단기 아르바이트로 맥도널드에 근무 중인 것이라도 학교는 알 바가 아니다.  

 

 



"선생님, 저 취업했어요!!" 보다,

"선생님, 저 정말 가고 싶었던 기업에, 원하는 직무로 취업했어요!!"라는 연락이 나를 더 뛸 듯이 기쁘게 만든다. 본인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것을 향해 시간이 얼마가 걸리던 포기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노력해 나가는 것. 그 결과,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고 누구보다 몰입해서 일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진짜 취업'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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