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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Aug 19. 2021

무례함과 솔직함, 그 한 끗 차이

직선적인 건 무례한거야

네 말에 상처 받았어.. 그렇게 살지마..


대학시절, 동아리 멤버들과 떠난 여름 MT 롤링페이퍼의 한 귀퉁이에 적혀있는 멘트였다.

으레 그렇듯 롤링페이퍼에는 서로에 관한 칭찬 일색의 코멘트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고, 내 것 역시도 그러한 기대를 충실히 따라주며 즐거웠던 여행을 순조롭게 마무리하는 듯했다.  


"너, 너무 웃겨~" "덕분에 너무 즐거웠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아" 등등...


그렇게 달콤한 문장들에 심취해 앞뒤로 빼곡히 찬 A4 용지  마지막 장을 넘겨보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 코멘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내가 지금 뭘 본거지???'


그때가 내가 아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에 대한 간극을 '처음'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전까지 내가 아는 나는 '누구와도 잘 지내는 친화력 만렙의 만사가 즐거운 아이', 그게 전부였다.



진짜 어이가 없네

그날 이후 몇 주간은 '그렇게 살지마'라는 문장이 머릿속을 계속 맴도는 통에 괴로운 일상을 보냈다.  

'도대체, 왜 그런 말을 쓴 거야?'  황당했고, 이해가 안 됐고, 급기야 분노가 일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더 흐르자 감정의 소용돌이는 조금씩 진정이 되고 내가 까맣게 놓치고 있었던

'네 말에 상처 받았어'라는 본질이 비로소 생각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MT에 참여했던 멤버들 한 명, 한 명과 보냈던 최근의 대화 내용을 음절과 뉘앙스 단위로 공들여 해부해가며 나의 언행을 되짚어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아무리 분석을 해봐도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지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을만한 특별한 사건은 떠오르지가 않는 것이다.  내 기억은 온통 같이 웃고, 수다 떨고, 밥 먹고, 술 마시며 보냈던 행복한 시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가슴에 피를 철철 흘리며, 암흑 같은 시간을 보냈다니..'  


나 자신이 순간 끔찍하게 느껴졌다.  

결국 난, 가장 친한 멤버에게 부끄러운 고백을 하고, 도움을 구했다.


"나.. 사실... 그거 누가 쓴 건지 알아"


'!!!!!!!!!!!!!!!!!!!!!!!!!!!!!!!!!!!!!!!!!!!!!!!!'


"네가 A한테 '얼굴에 여드름이 왜 그렇게 많아?'라고 한 것 때문에 그래"

"A한테 여드름은 엄청난 콤플렉스인데 네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건드린 거야"


'아................................'


부끄럽지만 그 상황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내가 정말로 그랬다. 물론 상처를 주려고 의도한 말은 아니었지만

내 기준에서 '별거 아니라고' 농담처럼 치부했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는 엄청난 좌절감을 주는 말이 되었다.

내 의도가 그게 아니었다고 해서 끝인 게 아니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었다면, 돌을 던진 자가 과연 무고하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다. 애초에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흉기가 될지도 모르는 돌을 던져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 이후에도 무심결에 내뱉은 '직선적인 표현'은 종종 화살이 되어 주변인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런 과정에서 조금씩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더 자주 가지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분명했다.

내가 타인으로부터 상처 받고 싶지 않은 것처럼, 나 역시도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공감, 무조건적인 수용, 경청



상담학 개론 첫머리에 있는 3원칙이다.

나 보다는 타인의 입장과 감정을 우선하는 대화 기법이기도 하기에 내가 내뱉는 말 한마디는 철저하게 상대의 반응 여하에 따라 달라진다. '상대'가 대화의 주연이라면, 나는 철저하게 조연이 되는 셈이다. 이 기법을 몸에 새긴 이후에는 내가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거의 사라졌고, 오히려 인간 관계가 더욱 개선되기 시작했다.


상대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니, 상대가 보여주는 언행의 내용이나 형식보다 그 안에 나를 향한 진심을 더욱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얼음이 다 녹아 맹물이 돼버린 15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물로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나였다면 얼음이 녹았으니 못 마신다고 면전에서 구박했을 것이다), 상대가 나를 위해 가진 3천 원 중에 1500원을 쓰고, 라테를 살까 아아를 살까 내 취향에 대해 고민해주고, 내가 있는 곳까지 땡볕을 걸어와 주었다는 사실 자체에 큰 감동을 받는다.  커피 자체보다 그 과정 전부가 그 사람이 내가 선물한 '진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상담직으로 전향 후, 나는 내 말 한마디의 무게를 이전보다 훨씬 더 크게 실감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할 수 있다는 말 한마디에 큰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항상 따뜻한 격려의 말을 해주셔서 감동받았습니다"

"선생님이 저도 몰랐던 제 장점을 찾아주셔서 너무 좋았습니다"

 

이렇게 말 한마디에 삶의 동력을 얻는 걸 보면 사람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쉽게 일으킬 수 있다면 무수한 긍정의 말들을 아낄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을까 싶다.  

격려, 용기, 응원, 인정, 위로, 칭찬, 감사..

이런 표현을 얼마나 자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을 향해 쓰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과거에 무심코 내가 던진 말 한마디로 상처 받았을 누군가(단수 or 복수)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지금의 일'을 통해 조금씩 만회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저는 취업보다는 미국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원대한 꿈이네! 멋지다!

그럼 일단 어떤 준비와 노력을 해야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는지 선생님이랑 하나씩 살펴보자."


정신 차린 이후,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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