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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Nov 03. 2022

대(大)퇴사의 시대

변화의 바람은 세대 특성이 아닌 변화하려는 의지에서 시작된다  

어, 나 육아휴직 중이야


오랜만에 통화로 안부를 전한 과거 동료의 근황에 깜짝 놀랐다.

법적인 권리인 육아휴직을 쓰는 것이 뭐가 대수인가? 싶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육아휴직의 주체로 '남성'의 비중이 높아진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어느덧 7년 전이 돼버린 내가 경험한 사기업 문화만 해도 육아휴직이건 출산 휴가이건 '자리를 비운다'라는 사실 자체에 대한 조직 내부의 배타적인 시선이 명백히 존재했던 탓이다.  장기 휴직은커녕 며칠 휴가만 가려해도 '책상 빠지지 않게 조심해'라는 등골 서늘한 농담을 공공연하게 주고받을 정도였다. 따라서 내 자리를 물리적으로 사수하는 것도 나의 입지를 위태롭게 만들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MZ세대'가 조직 생활의 주역이 되면서 직장 문화가 놀라울 정도로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눈치 보는 퇴근', '의미 없는 야근', '회식 강요', '상사의 업무 외적인 부당한 요구', '직장 동료 또는 상사의 괴롭힘', '공 가로채기', '퇴사 각오로 써야 하는 육아휴직', '있어도 못쓰는 생리휴가' 등 - 뜨악 PTSD ㅜㅜ -  이전 세대들이 당연하게 묵인하고, 견뎌야만 했던 설득력 없던 문화들이 마침내 고리타분하고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는 꼰대 문화의 전유물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전 세대라고 해서 그러한 문화에 대해 심리적인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어느 누구 하나 '문제 삼지' 않을뿐더러, 가령 용기 있는 누군가에 의해 공론화가 된다 해도 그 이후에 목소리를 낸 사람만 곤경에 처하는 상황을 종종 목도해오면서,  문제의 골은 깊어지는 반면 사람들은 점점 입을 닫아버리는 사태가 반복돼 온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조직 생활 부적응자'로 낙인찍혀 인간관계에 큰 어려움을 초래하고, 인사고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생계와도 직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80~90년대 생이 조직에 차지하는 절대적인 비중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생각과 태도가 곧 조직 문화의 '대세'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두 명이 아닌 대다수가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철옹성 같던 썩은 문화의 뿌리를 흔들 만큼 막강한 힘을 지닌 것은 분명한 듯하다.  


보편적으로 알려진 관점에서 MZ세대는 '조직보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매우 크기 때문에 '나의 성장이 곧 조직의 성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달리 말하면 그 어떤 것도 자신의 발전과 안위를 앞서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명성 있는 기업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스스로의 성장을 도모할 수 없다면 망설임 없이 '퇴사'를 선택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와 같이 MZ세대가 주도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회사를 떠나는 현상을 두고 '대퇴사의 시대'라고 명명하기 시작했다.


이는 타인에게 보이는 것보다 스스로가 지니는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기 때문에 일견 고무적이다. 자신의 성공을 외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납득할 수 없는 상황도 견디는 등 자기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내적인 만족'을 더 추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 생활에서 이러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면 퇴사할 필요는 없을터!)  


때문에 MZ세대는 직장생활을 삶 그 자체가 아닌,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 당장 이직할 곳이 없거나 또는 당장 이직하는 곳이 이전 직장보다 연봉 수준이 낮다고 해도 현재의 조직 생활이 '불행'하다고 느껴지면 더 이상의 고민은 시간 낭비라고 여긴다.


취업 상담 현장에서도 이런 흐름을 크게 체감하고 있다.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힘들게 입사한 공기업을 1년 만에 퇴사하거나,  불필요한 책임만 강요되는 정규직을 마다하고 자발적인 계약직을 선택하거나, 안정적인 연봉과 근무 환경이 보장된 기업에서 조차도 이직을 고민하는 학생까지 과거와 달리 취업 이후에도 나를 찾는 제자들의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들의 고민이 가리키는 곳에는 공통적으로 '자기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몸은 편한데... 정체되어있는 기분이 들어요", "힘들기만 하고 배우는 게 없어요"
"업무가 단순해서 몇 년씩 해봐야 전문성이 안 생길 것 같아요"


나는 한 편으로 '최저임금 상승'과 '플랫폼 전성기'가 대퇴사를 가속화시켰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아무리 MZ세대의 직업 가치관이 달라졌다고 해도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는 누구도 100% 쿨~해질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당장 회사를 그만둬도 편의점 알바만으로도 월세에 공과금, 생활비까지 충당이 가능하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즉,  생계 때문에 자신의 현재 또는 미래에 대해 '다른 맘'을 먹을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과거에 비해 이제는 뭐가 됐건 '생각해보고',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 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회 환경 변화가 MZ세대의 직업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지대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해보기 전까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깜깜했던 미래가 현재는 퇴사를 통해 확보한 '여유(?)' 기간에 크고 작은 변화를 시도하며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이는 비단 MZ세대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커다란 환경 변화를 기꺼이 수용하고,

인생의 중요한 기회로서 활용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어떤 세대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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