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그레이 Nov 21. 2020

계약직 근로자에 대한 흔한 오해

계약직이여, 열정의 선을 넘지 말지어다

비정규직 = 역량 미달?


사기업 영업직에서 상담직으로 인생 이모작 실현 후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라면 '고용형태'와 그에 따른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직업을 바꾸기 전까지 '비정규직'은  2년 주기로 바뀌던 갓 스무 살을 넘긴 앳된 여직원으로 호환될 정도로 나와는 무관한 개념이었다.


게다가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당시의 나 조차도 비정규직에 대한 몹쓸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모든 면에서 업무 역량이 정규직에 비해 부족한 사람들 내지는 정규직이 되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하거나 혹은 덜 절실한 사람들.. 이란 생각이었다.




과거 기업체 경력을 살리면서도 이전과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싶었던 내게 '청년 대상의 취업컨설팅'은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맞춤 선택지였다. 미세한 시계 부품처럼 개인과 타인의 역량이 끝도 없이 맞물려야만 시간이라는 최종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업무와는 달리, 개인의 역량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상담직은 어찌 보면 그동안의 직장생활을 통해 채우지 못한 '전문성'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직 후,  상담 직종에 대해 예상치도 못한 냉혹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하나는 상담 직무의 전문 역량에 대한 명확한 검증절차가 없다는  것.

둘은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체계가  어디에도 만들어져있지 않다는 점.

셋은 그래서 정규직 vs 비정규직의 경계가 모호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즉, 정규직이 특별히 비정규직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기업의 채용문화 및 직업관 다변화에 따라 직업상담에 대한 사회적인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에 반해 해당 직무 종사자에 대한 사회 시스템은 이를 전혀 따라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보니 경력 1년 차와 10년 차의 급여가 동일한 웃지 못할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계약직 다 그렇지 뭐


계약직으로 입사 후 생전 처음 고용 신분사회가 존재함을 실감했다. 정규직의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무시는 공공연하게 일어났지만 문제 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계약직한테 뭘 기대해'라는 정규직의 비정규직에 대한 기본적인 멸시와 '어차피 나갈 건데.. 뭐하러'라는 비정규직의 습관적인 불성실함이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어떤 커리어에 기반해 어떤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설령 역량이 뛰어나다고 해도 미리 정해둔 크기만큼만 일 해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누구도 정규직 신입사원보다 연봉이 적은 비정규직 다년차에게 열심히 일해달라고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다.   



계약직이 뭘 그렇게 열심히 일해?


목표, 성과가 전부였던 영업직에서  10년을 근무했던 나의 DNA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열악한 처우보다 최악이었던 것은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과거의 다른 비정규직들도 이런 심정이었으려나..' 하는 공감이 뒤늦게 밀려왔다.  '딱 그만큼'이라는 편견을 걷어내야 했다.  그건 내 커리어에 대한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기도 했다.  애초에 선택지가 없었던 '고용형태' 때문에 일에 대한 나의 진지함과 열정은 물론 역량이 폄하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계약직인데 이렇게까지 해주실 줄 몰랐습니다

   

영혼을 갈아 넣은 결과는 반쪽짜리 인정이었다.  여전히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노고와 성과에도 '계약직' 스티커를 붙였다. 마치 행인에게 길을 물어봤는데 마침 그 사람이 너무도 친절하게 목적지까지 길 안내를 도와줬을 때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라는 말과 함께 감사인사를 표현하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였다. 그저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정도의 말이면 충분했다. 아니 안 해도 상관없다. 나도 내 일에 대한 책임을 질 뿐 누구의 인정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념이라고 할 수도 없는 '자기 일에 최선과 책임을 다하자'는 지극히 평범한 생각이 어찌하여 계약직 신분에서는 꽤 특별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몹시 불편하다.


계약직에게는 열정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barrier)이 존재하는 듯 하여 씁쓸할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