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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Oct 10. 2020

90년대생은 몰라도 돼요

꿈을 먹고 자라야만 하는 세대

애들은 몰라도 돼


어릴 적, 어른들의 대화 중에 우연히 듣게 된 모르는 내용을 알려고 들면 어른들은 손사래를 치며 저쪽에 있는 '애들 노는 곳'에 가라고 채근했다. 그럴 때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했다는 서운함에 하루빨리 커서 어른들의 대화에 동참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 어른들이 내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던 것은 결코 나를  무시해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보다는 미리 알아서 전혀 도움이 될 것이 없는 불필요한 정보들로부터 어린 세대를 지켜주기 위한 배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나는 서울의 모 대학에서 3년째 취업 상담을 하고 있다.

하루 평균 2~3명의 학생을 만나 1시간 동안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진로, 취업 고민을 듣고 나의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하여 최적의 대안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아주 가끔은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연애나 가정사 상담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무튼 그렇게 지난 3년 간 만난 학생들의 수만  어림잡아 2천 명은 되고, 그들 모두가 한 때의 화두이기도 했던 '90년대생'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나의 친동생도 90년대생으로 그녀의 한 평생을 동거인으로 직관(?)한 이력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누구보다 90년대생에 대한 조예(?)가 남다르다고 자신한다.


그리고 그 조예라는 것은 거창한 인문사회적인 고찰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그들에 대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개인적인 연민에 가깝다. 


너네 집에 컴퓨터 있어?


2000년 대 초만 해도 집에 컴퓨터가 있다는 것은 꽤 놀랄만한 일이었다. 컴퓨터가 워낙 비싸기도 했고 인터넷 사용이 그렇게 보편화되었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대학 입학 후 인터넷을 처음 접했다).

지금처럼 시도 때도 없이 인터넷에 접속 가능한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당시 내가 얻을 수 있었던 모든 '정보'라는 것은 학교 수업과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유일했다


부모님 역시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자식들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이나 전략을 제시해 줄 만큼 풍부한 경험이나 지식, 사회적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지도 못했다.

그저 '대학만 들어가면 다 잘돼'라는 맹목적인 믿음 하나로 생업에 매달려 4년제 등록금을 조달하는 것에만 매진하셨을 뿐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당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바보스러울 만큼 아는 게 거의 없었다. 학교는 그저 '캠퍼스의 낭만'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었고,  취업은 4학년이 되면 선배들 따라서 나도 덩달아 되는 줄로만 알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분명했던 것은 그 당시 나에게 '미래'는 불확실하긴 해도 불안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안 잘리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그런데 대학에서 수많은 상담을 하면서 이제 갓 20살을 넘긴 90년 대생들에게 미래는 '불안' 그 자체였다.


취업 상담 10명 중에 어림 잡아 5~6명이 '공기업'을 취업 목표로 정하며, 그 이유를 한결같이 '고용 안정성'이라는 뭔가 20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한 대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경험이 거의 없는 친구들이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들다 보면 그들의 그런 사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대상은 다름 아닌 부모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지금의 20대 자녀를 둔 60~70년대 출생의 부모님들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를 겪으셨고 그로 인해 당신들이 겪었던 일그러진 사회상을 자녀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하여  미래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지속적으로 당부해 오신 듯 보였다.  게다가 미디어에서는 하루가 머다 하고 '취업난', '부당해고', '코로나로 인한 채용규모 축소'와 같은 암울한 현실을 전달하기에 바쁘니  90년대생들 미래에 대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가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 어떻게 하면 돼요?


그러다 보니 내가 만난 대부분의 90년대생들은 그러한 부정적인 '정보'들에 둘러싸여 자신의 미래를 너무 빨리 단정해 버리는 데 익숙한 듯 보였다.  그 어느 세대보다 월등하게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1시간의 상담 끝에 꼭 '정답'을 한 번 더 요구했다. 예를 들어 현 지점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에 A, B, C, D의 옵션이 있음을 알려줬다면  "그래서 네 가지 중에 어떤 길로 갈까요?"를 또다시 물어오는 것이다.


최대한 실현 가능한 다양한 옵션을 제시하고, 최종 선택은 본인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오랜 기간 고수해 온 나의 상담 제1원칙이지만  그들의 불안하고 복잡한 심경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쉽게 외면하기도 어렵다.



무식하면 용감해져


그런 면에서 순진하리만큼 무지했던 나의 20대가 지금의 90년 대생들보다 덜 불행했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오히려 너무 정보가 없다 보니 '아, 그때 그걸 했었어야 했는데'라고 미처 잡지 못한 기회에 대한 후회의 순간은 한 번씩 있어도 단 한 번도 '나는 꼭 성공할 거야'라는 믿음을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저버린 적은 없기 때문이다.


설령 죽는 순간까지 (남들이 말하는) 성공 근처에도 못 간다 해도 분명한 것은 이 무지에서 비롯된 자신감이야말로 지금까지도 도전하는 삶을 살게 만들어줌은 물론 그로 인해 자꾸만 '환상적인 미래'에 대한 꿈을 갖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나에게 상상 초월의 원동력과 행복감을 그것도 매일같이 선사해준다.


그러니 본격적인 인생의 닻을 올리기도 전에 너무 많은 불행을 예견하다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안정성'이라는  삶의 가치에 맹목적일 수밖에 없는 그들이 몹시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선생님, 저는 하고 싶은 게 있어요"라고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한 친구들을 만난 건 놀랍게도 지난 2천 여명 중 고작 열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래서 희박한 확률로 그런 친구들을  만날 때면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떠나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해주고 싶다.  왜냐하면 그들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90년대생들이 조금만 이 세상에 무지해졌으면 한다. 그래서 번뿐인 인생의 모험과 도전에 기꺼이 용기를 내어준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는 '밝은 미래'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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