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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Apr 03. 2021

저 또 퇴사합니다

그런데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아요

아싸, 그만둔다!!
 



통산 8번째 퇴사다.

전후 사정을 떠나 회사를 '때려치운다'는 것은 그 말 맛만큼이나 여러 면에서 짜릿하다.

일단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빈부격차가 존재하지 않는 '24시간'을 오롯이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 거짓말이다.  

200% 솔직해보자면 그 그... 어금니가 자동으로 깨물어지는 그 그 지긋지긋한 군상들을 더 이상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젤로 좋다.  늘 사람 때문에 마음이 지옥이다.




대학 동기 대부분은 첫 회사에서 십수 년째 근무하고 있다.

몇 년만 지나도 엉덩이가 들썩이는 내 입장에서는 그들 모두가 신통방통할 따름이지만, 반대로 나의 다발성(?) 퇴사 이력은 모임에서 늘 '화제'의 중심에 있다.


"야.. 너 지금은 어디에서 일해?"가 우리들 사이에선 나의 안부를 묻는 첫마디가 됐다.


그럼에도 근심과 걱정은 있다.

누군가에게 나의 빈번한 퇴사가 혹여나 나쁜 습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작은 우려때문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분명 내게도 '퇴사'는 인생의 뿌리를 흔들 만큼 큰 혼란을 가져다주는 일대의 사건이다. 다만,, 몇 차례 반복하다 보니 어느 정도 이골이 났다고 해야 할까.


내가 퇴사를 충동적으로 결정한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라는 점은 재차 분명히 해두고 싶다.  이번 퇴사 결심의 경우 작년부터 얼추 반년 이상이나 심사숙고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뭔가를 결정하는 데 그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비생산적이니까..)  다만 여느 직장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모두가 마음으로만 수백 번 다짐할 때 나는 결심이 선 순간 '실행'에 옮기는 것뿐이다.

 

단행의 동력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갈망이 임계치를 넘었을 때다. 여러 차례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듯 나는 늘 한도 초과의 걱정과 불안으로 고통을 자초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 선택으로 초래될 막연한 불안보다는 마음이 동하는 일을 제 때 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후회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크기에 가능했다.  




퇴사 표명 D-day를 정한 수개월 전부터 나는 매일 아침 수분기가 쫙 빠진  뻑뻑한 안구를 짓누르며 출근을 해왔다. 과연 나 말고 누가 나를 대체할 수 있을까 하는 교만함, 혹시 아무나가 와서 공든 탑을 무너뜨리면 어쩌지라는 노파심, 그 모든 게 나랑 더 이상 무슨 상관이냐는 무정함까지 내 마음은 폭풍우 속에서 유랑했다.  


드디어 그 날이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깐 면담 가능할까요?"


"..... 그냥 전화로 하면 안 될까요?..."


평소 주식과 회식 이외의 모든 면에서 둔감하기로 소문난 팀장의 촉이 놀랍게도 뭔가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전화받고 심쿵했어요... 설마 그거는 아니죠..??"


회의실에 마주 앉은 팀장의 얼굴은 이미 검붉게 상기되어있다.


"어쩌죠..? 심쿵하시는 그 이야기 맞습니다"    


회사를 떠나기로 한 이상 퇴사 사유는 상대의 말문을 막을 만큼 군더더기 없는 것이 좋다. 

명색이 프로 퇴사러 아니던가.   

아프다고 하면 병가를 내줄 것이고, 처우가 불만이면 조정을 해줄 것이고, 업무가 많으면 줄여 줄 것이고, 사람 때문에 힘들면 그역 시도 어떻게 방안을 마련하겠노라 이야기할 것이 뻔하다. 그러면 몇 날 며칠을 가짜 이유로 시달려야 한다.  사실상 그 모든 것들은 퇴사를 고민하게 된 '계기'에 포함이 된 것은 맞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이 곳에서 더 이상 제 개인의 비전이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 근무일을 정했고, 퇴직서를 전자 기안했고, 인수인계서를 정성스럽게 썼다.

후임에 대한 자격 요건과 담당업무까지 정리해서 팀장에게 넘겼다. 팀장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말했다.


"헥~~?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계셨군요!"


'네.. 그걸 모르셨던 팀장님 덕분에 제가 팀장을 해도 될 정도예요.'라고 대꾸하고 싶은 것을 또 한 번 참았다.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진짜.. 알면 알수록 지구 밖으로 더 멀어지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제 남은 것은 퇴사 전까지 인간적인 교감을 했던 분들과 부지런히 식사와 티타임을 가지며 인사를 나누는 일이다. 지난 3년 치의 밀린 일정을 3주 이내에 소화를 하려다 보니 달력 스케줄이 점심, 저녁으로 빼곡하다.  감사하게도 "선생님이 안 계시면 그 팀 큰일 나지 않나요?"라며 그간의 노고를 알아주는 분들 덕분에 벽창호 같은 팀장으로부터 받은 실망감이 꽤 희석됐다.   


"사람이 전부인데.. 사람 귀한 줄을 모르고..ㅉㅉㅉ"


  




아마도 이번이 내 생애 마지막 퇴사가 될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마지막 퇴사다'라고 단언하고 싶지만 인생 꽤 살아보니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말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간은 또 다른 퇴사의 시작이 될 뿐인 이직을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말 그대로 남을 위한 일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모르던 20-30대 시절에는 월급만 따박따박 들어오면 그런 인생도 뽐내며 살기에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런데 '뭘 좀 아는' 40대가 되니 그것이 내 인생을 얼마나 낭비하는 삶인지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회사가 내 인생을 허비하게 두는 것을 더 이상은 허용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것 해보자고.

먼 미래,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그때 그거 해볼걸'이라는 비참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 순간 일단 시작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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