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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떨림 Sep 28. 2021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나의 아저씨

공생

한달을 거쳐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봤다. 2018년 방영했던 나의 아저씨는 3년이 지난 2021년 지금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유치하지 않았다. http://program.tving.com/tvn/mymister/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20대 여성을 통해 바라본 사회인의 녹슬음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불우한 그를 통해 쉽게 지나칠수 있는 평범한 삶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깨닫게 해준다. 20대 불우한 여성과 40대 남성이 만나 '나를 살렸다' 그리고 '나를 살게했다'로 귀결되는 드라마의 스토리는 보는 내내 나의 삶을 투영한다. 어리든 나이 먹었든 삶의 무게가 무거운건 어차피 다 똑같다. 


그런데 마치 사람들은 과거의 삶을 돌아볼때 '행복했다'고 '삶이 쉬웠다'고 명명짓고 젊은사람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나도 한때는'이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드라마속 주인공 20대 불우한 여성은 '빨리 나이가 들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힘들지 않겠죠"라는 그의 말. 하지만 이미 나이든 그들은 젊은시절의 그보다 더 무거운 힘겨움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이유는 소소한 삶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그들의 삶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현상에 대해서 일침을 가하는 드라마랄까. 불만가득한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살아보고자 하는 삶인 것을 일깨워주는 드라마다.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가 떠올랐다. '나의 아저씨'에서 불우한 20대 여성이 아저씨를 위해 남은 인생마저 희생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40대 아저씨도 20대 여성에게 도움을 받고 삶을 다시 살게되는 계기를 제공받는다. 그리고 20대 여성은 말할 것도 없다.


나의 초등학생 시절 필독도서인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도 맥락이 비슷하다. 처음에는 나무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한 소년에게 바치면서 결국에는 그루터기만 남는다. (기억속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가 사랑하는 소년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줘서 '행복하다'고 그리고 '자신또한 할 일을 다했음에 행복하다'고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 당시 자신의 할 일이라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것을 내어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가르쳐 주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찢어놓았다. 그런데 이제서야 알겠다. 그러므로 자신이 행복했음을 그리고 자신또한 성장했음을 알게됐다. 라임 오렌지나무의 사랑방식이었고 그의 성장방식이었을 것이다다. 내 어린시절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무가 너무 불쌍해서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도 '설마 이게 진짜 끝일까' 하는 원망스러움이 내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그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 아무도 찾지 않는 '라임 오렌지나무' 보다는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사는 '라임 오렌지 나무'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아름답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현 시대에서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 좀 더 보태야하는 부분이 있다. 'Love Yourself'. 내 자신을 사랑하라. 나를 사랑하고 다른 이를 사랑하다보면 진정한 삶의 의미를 그리고 행복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먼저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하고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나의 아저씨'에서  20대 불우한 여성은 "왜 비웃어요? 자기가 사람 좋아할때 되게 치사한가 보지.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게 뭔지는 아나?"라며 사랑에 대한 따뜻함을 말한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 고프고 관심이 고프다. 사랑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어린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사랑은 한결같이 필요한 것이다. 사랑이 고픈 우리들에게.


사진=나의아저씨 tvn 제공 현장사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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