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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떨림 Oct 27. 2021

내가 아는 만큼 보이는 세상

책을 읽나요

책을 읽은지 너무 오래다.


가끔은 책속에 빠져서 그 이야기에 몰입되 나의 현실을 잊고 살던 떄가 있었다. 그러다 타인에 의해, 타의로 인해 책 속에서 빠져나와야 하면 나의 현실에 실망하곤 했다. 내가 알던 책 속의 세상은 너무나도 신비하고 대단했기 때문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 중에서 판타지와 로맨스를 가장 좋아한다. 가상 세계에서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다.


왠지 현실의 일상이 시시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쓴, 특히 역사적으로 억울했던 사건들을 재구성한 소설은 피하는 편이다. 감정몰입이 너무 심해서 내 몸과 마음이 피폐해 진다. 그런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즐겨보는 편이다. 글과 시각적인 자극은 매우 다르게 다가오기 떄문이다.


그러다 결혼하고 2년이 지났던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는 소설이 전세계적으로 이슈였다. 첫째아이를 키우면서 이슈라는 그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19금의 야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저 책은 주부로 평생을 살던 작가가 심심해서 적은 글이라고 했다. 그런데 모두의 공감을 샀다고 하니 궁금하기도 했다.


굉장히 두터운 두께의 책 6권으로 발행된 소설이었다. 중간에 지겹기도 하고 이게먼가 싶기도 했는데 그냥 읽었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소설을 읽을땐 지루한 시점이 온다. 책을 읽다보면 "아, 이거 계속 읽어....말어?" "와...이거 뒷이야기가 안궁금한데... 접을까...말까" "와 완전 잼있어. 대박 이게 끝이라고? 나는 왜 다음편을 안산거지? 와 대박 여기서 끊는다고?" 등 이 책을 읽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뒷 이야기가 궁금한지 안한지, 책을 계속 읽을지 그만읽을지 판단하는 지점이 온다.


그런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그냥 뭐랄까. "그래서 어떻게 되는건데?"라는 궁금증을 일으켰던 것 같다. "와 이게 읽히네"라고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다는 걸 누가 알기라도 하면 뭔가 찝찝하게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책 표지를 신문지로 싸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배울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에게 책은 주로 배움보다는 재미와 흥미 그리고 시간 때우기의 용도로 쓰여졌다. 각박한 일상에서 도망갈 수있는 돌파구다. 배움이 필요할땐 공부라는 매개체를 통해 문제지를 구매해서 배움의 지식을 쌓았다. 또는 뉴스를 보거나 기사를 읽었다.


나에게 책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그 가벼움이 쌓이다보니 나도 모르게 가벼움 속에서도 교훈이랄지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됐다. 책은 그냥 쓰여지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시시콜콜, 왁자지껄 아무생각없이 내뱉는 말이라고 느꼈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파악한다면 그건 그냥 하는 가벼운 말이 아닌 것이다. 대체로 그런 책을 찾는다. 가볍지만 그 속에 담긴 교훈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글들을 찾게 된다.


'그레이' 책은 교훈을 찾기 보다는 그냥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이런 책 저런 책이 있지 않겠는가.


일본작가 무라카미하루키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는 중학교인가, 고등학교의 권장도서로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권장도서가 아니라도 학교 도서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고 '왜 권장도서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이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곰곰히 생각해봐도 나는 이 작가의 의도를 알지 못했다.


아마 작가가 다다른 경지를 나는 미처 닿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가도 "아니 이게 읽혀?"라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았다. 아직 나의 통찰력과 책을 이해하는 깊이가 얕은 까닭인가 의심이 되기도 했다.


책은 독자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달리 읽힌다. 그리고 똑같은 책을 언제 읽느냐에 따라 그 해석도 달라진다. 만약 지금 내가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게되면 뭔가 깨달음이 있겠지 싶다.


글을 쓰다 갑자기 하병무 작가의 '남자의 향기'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 책을 고등학생때 처음 읽었던 것 같다. 이뤄질 수 없는 남매간의 사랑이었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다시금 이 책을 읽었다.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당장 그 책을 이해하기 어려우면 당장 그 책을 덮어도 좋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 만약 그 책이 다시금 생각난다면 책장을 넘겨봐도 좋겠다. 나의 삶이 녹록지 않은 만큼  그리고 그만큼 성숙해진 만큼 책을 보는 시각도 책을 이해하는 깊이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삶을 이해하는 것도 같다. 10년 전 5년 전 나의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너무 야박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행복하고 열심히 한 내가 자랑스러웠는데 말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냥 살아보니 그렇더라.


글을 쓰는 작가들의 입장과 가치관, 생각 또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느낀 지혜와 교훈을 나는 미쳐 모르고 지나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은 나보다 먼저 깨닫는 사람이 뒤따라오는 사람에게 주는 교훈과 재미, 흥미 그리고 즐거운 상상의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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