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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Apr 23. 2022

부서진 밤

코로나의 종식은 뉴스가 아닌 회식에서 공식화되었다. 갑작스레 알게 된 금요일 회식에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지인 약속은 다음 주로 미뤄야 했다. 그나마 한 가지 위로가 있다면 이년 전보다는 술을 조금, 아니 많이 즐기게 되었다는 것. 하긴, 오늘은 좀 마시고 취하고 싶은 날이기도 했다.


취하는  멍청해지는 거라고, 좋아하는 뮤지션의 글은 말했다. 오늘은 마시면서 내내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고, 분위기를 맞추고, 장단을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멍청해지기 위해서 술을 마시자. 때때로 흐린 눈으로 세상을  필요가 있는 것처럼 어떤 날은 스스로의 광대가 되어줄 필요도 있는 것이니까.


아직 주량을 모르는 몸은, 섞어 마신 첫 잔에 이미 취해버렸지만 나는 마시는 걸 멈추지 않았다. 따라지는 술잔에 떠날 동료에 대한 아쉬움을 담았고, 오고 가는 잔주에 한때 떠나야만 했던 나의 슬픔을 전했다. 삶의 애환 때문에, 서로를 원망했던 시절은 지나고 없었다. 미움도 아쉬움도, 이젠 지나고 없었다.


제대로 멍청해져서 조금씩 걷는 게 서툴러진다. 차가운 술은 독이 되어 아파온다. 그렇다. 술을 마신다는 건 스스로를 학대하는 일이다. 이렇게 마시는 건 몸에 고통을 붓는 일이다. 언 발에 오줌을 누고, 빚을 빚으로 돌려 막듯. 돈을 내어 산 몸의 고통으로 마음의 통증을 덮겠다는 역시나, 멍청한 노력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래야 했다. 적어도 오늘은, 그래야 했다.


내내 잘 참았지만,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두 팔에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날도 있는 거예요. 나를 모르는 운전대 위의 그가 내 마음을 말로 전한다. 어깨 위로 파도가 내리친다. 지금 넌 어디에 있을까. 지쳐버린 널 다시 볼 수 있을까.


찬찬히 부서지는 밤이다.



202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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