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Oct 04. 2019

김칫국


 "미안해.”  

 남편이 등을 돌려 안아준다.  

 어젯밤에 얘기하다가 감정이 상해 등을 돌리고 잤다. 등을 돌리고 누운 지 5분도 안 돼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별것도 아닌데 왜 이럴 때 꼭 눈물이 먼저 나는지. 울다가 잠이 들었다. 남편은 다시 얘기하려고 했는데 잠이 들어 버렸다고 했다. 남편의 말 한마디에 어제 일은 기억도 안 났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을 깨웠다. 아이들은 눈을 뜨자마자 브롤스타즈 열쇠고리를 가지고  실랑이를 벌였다. 아침밥은 코로 먹는 건지 입으로 먹는 건지 아들 둘은 오늘 아침도 전쟁이다.  

 “나 오늘 학교 안 가.”  

종혁이는 마른 눈물을 떨어뜨리며 가방을 등에 멘 체 벽에 붙었다.

  “에이, 왜 또 그래? 형아 먼저 가네.”    

 예준이가 후다닥 현관문을 박차고 나간다. 아침부터 한바탕 전쟁을 치르더니 결국 예준이가 이겼나 보다. 우선 학교에 보내야 하니 화를 참으며 종혁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싫어, 가기 싫어, 오늘은 쉴래.”

“이 눔에 브롤스타즈! 이것 때문에 학교에 안 가는 게 말이 돼! 이제 그만. 그만 울고 가. 학교 갔다 오면 형아 혼내줄게.”  

요지부동으로 있는 종혁이한테 결국 화도 내고 어르고 달래서 현관문 밖으로 밀었다.   

“잘 다녀와.”  

계속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인사만 하고 얼른 문을 닫았다.
 


아이들을 다 보내고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식탁에 늘어놓은 그릇을 개수대에 담그고, 머리부터 감으러 화장실로 갔다. 머리를 물에 적시고 샴푸를 펌핑하는 데, ‘띠띠띠디 띠리릭’ 소리가 났다.   

‘이 시간에 누구지?’    

손에 묻은 샴푸를 씻고 수건으로 머리를 감쌌다.   

“엄마!”  

“종혁아! 왜? 왜 아직 안 갔어?”  

종혁이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종혁이 얼굴과 시계를 번갈아 보다가 담임선생님한테 문자를 먼저 넣었다.  

‘선생님, 종혁이 15분 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종혁이를 꼭 안아주었다.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 돼서는 눈물을 그치질 않았다. 머리를 감싸고 있던 수건을 풀어서 얼굴을 닦아 주었다.   

“뭐야? 어디까지 갔다가 돌아온 거야?”  

“지하 1층까지. 엄마가 찾으러 올 줄 알았어. 내가 울고 갔으니까. 거기서 엄마 기다렸어. 그런데 안 오잖아!"  

“…….”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자기가 울고 갔으니, 엄마가 걱정돼서 내려와 볼 줄 알았다고?’

전혀 생각을 못 했는데, 그랬어야 했구나. 사과했다. 미안했다. 종혁이의 얼굴을 다시 물로 씻겨주고 학교까지 손잡고 데려다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참 감성적인 아이다.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에 맞춰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았다.  2시 30분. 아이들이 교문에서 쏟아져 나왔다. 예준이는 친구랑 신발주머니를 부딪치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입을 쉬지 않고 놀려대며 나왔다. 자전거 벨을 울렸다. 예준이는 고개를 돌려 얼른 나를 찾았다. 친구와 인사를 하고 ‘엄마’를 부르면서 뛰어와 안겼다. 가방을 벗겨 자전거 바구니에 담았다.

“오늘 종혁이 학교에 늦게 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아침에 있었던 일을 예준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종혁이가 많이 속상했던 거 같으니 브롤스타즈 열쇠고리를 좀 나누어 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야기를 꺼냈던 거다. 그런데 예준이는 전혀 다른 방향의 대답을 했다.   

“나종혁 웃기네, 웬 김칫국.”  

“뭐 김칫국? 아. 그러네. 하하하. 그래도 종혁이 오면 그렇게 말하지는 말자. 또 상처받으면 어떻게 해.”  예준이는 엄마가 걱정돼서 내려 와 볼 줄 알았다는 종혁이의 말이 헛된 기대로 느껴졌나 보다. 상황을 그럴싸한 말을 찾아내  표현하는 아이가 재미있었다.



“애들아, 저녁 먹어”

아이들은 식탁 의자에 앉기도 전에 등갈비를 하나씩 들고 뜯었다. 야채를 싫어하는 아이들의 밥상은 항상 고기반찬이다. 아이들이 밥을 먹기 시작하면 나는 아침부터 미뤄둔 설거지를 한다. 예준이가 손을 쪽쪽 빨더니 종혁이를 부른다.  

“종혁아. 너 김칫국물 먹어봤어?”

“응. 엄마~ 나 예전에 숟가락으로 김칫국물 떠먹어봤었지?”  

“으, 응, 그랬었지.”  

난 너무 웃겨서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앞으로는 웬만하면 먹지 마.”  

“왜?”  

종혁이는 밥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묻는다.  

“매우니까.”  

예준이도 종혁이의 눈을 맞추지 않고 말한다. 종혁이는 끝내 무슨 말인지 눈치채지 못했다.

등 너머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대화에 코에서 웃음 바람을 뿜었다.  


어젯밤에 나도 맛보았다. 김칫국의 매운맛. 남편의 코 고는 소리와 함께 떨어진 내 눈물이 매웠다. 아, 나도 남편한테 헛된 기대를 했었나 보다. 누군가에게 기대를 한다는 건 믿음에서 오는 것 같다. 남편과 10년 동안 살면서, 남편을 등지고 누웠을 때 10번 중 8번은 내 등을 다시 돌려 안아줬었다. 그런 신뢰가 쌓였기에 기대도 할 수 있었겠지. 종혁이도 나에 대한 믿음에 지하 1층에서 20분 동안 기다렸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종혁이한테 더 미안해졌다. 그리고 고마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밀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