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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pr 08. 2021

어떤 날씨를 싫어하세요?

QuestioN Diary 5 빗속에 있어야 하는 비 오는 날.

 빗속에 있어야 하는 비 오는 날.


 주말에 비가 내렸다. 비 오는 날은 꼼짝 하지 않고, 방구석을 뒹굴면서 부침개 부쳐 먹고, 영화도 보고, 밀린 낮잠이나 자면서 보내는 게 최고다.

 그 최고의 행위를 실천하기 위해 남편하고 부침개 거리를 사러 갔다. 빗줄기가 제법 거세다. 차 앞 유리에 부딪혀 쓸려 내리는 빗물이 시원했다.

 -여보는 비 오는 날 좋아?

 남편이 물었다.

 -뭐, 이렇게 안에서 내리는 비를 보는 건 좋지, 비 오는 날 냄새도 좋고, 그런데 저 속으로 들어가 있는 건 싫어.

 -여보는?

 -나도 빗속은 싫어.

 남편은 짧게 대답하고 그냥 웃었다. 참 싱거운 사람이다.



 내가 빗속을 이렇게까지 싫어하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2000년 초여름 문턱.    

 비가 내렸다.

 이런 젠장. 이런 날 곱슬머리인 나는 아침밥을 먹지 않는다. 아니 먹을 수가 없다. 이때가 기회라고 들고 날뛸 지랄 머리들을 잠재워야 하기 때문이다.

 뜨겁게 달군 매직기로 머리카락을 한가락 한가락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폈다. 손이 벌게지도록 폈다. 하지만 그다지 소용이 없다. 굵은 빗방울이야 우산으로 막는다지만, 자유로운 영혼으로 떠돌아다니는 습기는 어찌 막을 수가 없다. 뜨거운 김에 얌전한 척 내숭 떨고 있던 머리카락들이 이때다 하고 꿈틀거린다. 안 돼! 제발 가만히 있어라. 이대로 학교까지만 가자.


 수업을 마치고 동아리 방으로 왔다. 이 비가 그치면 집에 가리라. 창가에 의자를 끌어당겼다. 창문에 부딪히는 비를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는 봐줄 만했다. 시원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빗줄기 따라 땅속으로 무한 하강하는 마음도 즐길만했다.

 그날은 시원했다. 그칠줄 모르는 세찬 빗줄기를 멍 때리고 바라보면서 머릿속까지 씻기는 것 같았다.

 쾅!

 문이 세차게 열렸다. 한 학번 위 선배였다. 선배는 우산 없이 빗속을 달려왔는지 머리도 옷도 흠뻑 젖어있었다. 두 손을 머리카락 사이에 넣어 마구 흔들어대며 빗물을 털었다.

 띠로리로리~ 이런!

 마구 흔들어 댔다고 했지만 내 기억 속의 그 순간은 슬로모션이었다. 띠로리한 마음을 들킬까 봐 얼른 고개를 돌렸다.

 -너 우산 있어?

 -네.

 -그럼 나 경영대까지만 데려다주면 안 될까?

끄덕끄덕, 당연히 되지 왜 안 되겠는가? 침을 꼴깍 삼켰다.


 조그마한 자동 3단 우산을 촥 펼치고 그 좁은 공간을 선배와 함께 들어갔다. 선배는 고맙다는 말로 시작을 해서 내내 뭐라 뭐라 말을 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했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윙~ 하는 이명처럼 들렸다. 경영대에 도착했다. 선배는 활짝 웃으면 고맙다는 말과 함께 다음에 밥을 사겠다며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이놈에 심장은 동아리방에 도착해서도 진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띠로리도, 심장의 두방망이질도 순식간에 X팔림으로 바뀌었다. 문 옆에 있는 거울 속에 ‘톰과 제리’의 톰이 있었다. 폭탄(?), 벼락(?) 맞은 톰, 전기에 감전된 톰이었다. 그래도 그건 만화라 웃을 수 있었지만, 이건 현실. 날 설레게 했던 선배도 톰을 봤겠지?          

 “으악!”

벌게질 대로 벌게 진 얼굴에 지랄맞은 머리카락들은 테크노를 추고 있었다. 이런 제길.

가방을 챙겨 들고나와 우산을 푹 눌러 썼다. 그리고 전력 질주로 뛰었다.



 남의 시선을 꽤 의식했던 20살의 기억이지만, 아직도 그때 톰의 모습이 생생해 얼굴이 붉어져 피식 웃었다.   

-왜? 무슨 생각해?

-아냐, 저기 우산 쓰고도 뛰어가는 사람 보니까, 저 사람도 우리랑 찌찌뽕인 거 같아서.

 빗속 싫어하는 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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