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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Sep 17. 2021

형제의 아침

2021년

예준이는 12살, 종혁이는 10살이다.


“엄마, 운동 안 가요?”

“응, 날씨가 꾸리꾸리하네, 안 나갈래.”

“아, 그럼 신문은요? 엄마 신문 갖다주면 안 돼요?”

“네가 가지고 와.”

“엄마 이 머리로 어떻게 나가요~, 엄마가 가져다줘요~”

“싫어, 모자 쓰고 갔다 오면 되잖아.”


예준이가 아침부터 신문을 애타게 찾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어린이 신문에 실린 사설을 읽고 문제를 풀면 게임 10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게임의 노예.

신문은 1층 우편함으로 배달이 된다. 요 며칠은 내가 아침 운동을 나갔다 들어오면서 가지고 들어왔었다. 예준이는 덕분에 게임 시간을 쉽게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안 좋아 나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아침부터 징징거리며 운동을 나가라는 둥, 신문을 가져다주면 100원을 준다는 둥 보채고 있다. 그래도 꿈쩍도 안 하고 있으니 할 수 없이 모자를 눌러 쓰고 나갈 채비를 했다.


“아~ 잘 잤다.”

그때, 종혁이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예준이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더니 종혁이 머리에 씌었다.

“종혁아, 신문 가지고 와.”

잠이 덜 깬 종혁이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에 얹힌 모자를 벗어 던졌다.

“신문 가지고 오면 내가 100원 줄게.”

여우 같은 예준이는 상당히 상냥한 목소리로 종혁이를 꾀었다. 종혁이는 잠깐 고민하더니,

“엄마 옷 주세요. 신문 가지러 가게.”

정말 ‘헐’ 이다.

“네가 직접 꺼내 입어. 아니면 형한테 꺼내 달라고 하던가.”

“형아, 나 옷 줘.”

“응, 알았어.”

예준이는 부리나케 옷장으로 달려가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옷이나 집어와 던졌다.

종혁이는 눈에 눈곱을 쓱 문질러 떼어 내고는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나갔다.


“형~ 100원.”

“알았어, 알았어.”

종혁이는 신문을 바닥에 딱지 치듯 팽개쳤다. 예준이는 그걸 감사히 주웠다.


“형, 나랑 오목 한 판 하자.”

종혁이는 신문을 펼치는 예준이 옆에 바짝 붙어 말했다.

“싫어. 나 신문 보고 게임 할 거야.”

“50원 내기로 하자. 딱 두 판 해서 형이 이기면 돈 안 줘도 되.”

예준이는 종혁이의 제안에 솔깃했는지 신문을 덮었다.

“알았어. 딱 두 판만 하자.”

예준이는 손가락 마디마디를 꺾으며 따다닥 소리를 냈다. 종혁이는 목을 좌우로 두세 번 늘렸다. 무슨 대국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진지했다. 둘은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오목판만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리고 구슬이 놓이는 소리만 한 번씩 들렸다.


“오예~!”

“한 판 더.”

“알았어, 이번만 이기면 100원 안 줘도 되는 거지?”

“아, 알았어!”

첫판은 예준이가 이겼나 보다. 잠시 다시 조용해졌다.


“예~!”

이번엔 종혁이가 이겼다.

“다시 해!”

기어이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예준이가 다시 하자고 했다. 이번엔 정적이 좀 길었다.   


“음하하하하, 내놔 100원.”

결국 종혁이가 100원을 지켜냈다. 예준이는 학교 갔다 와서 다시 붙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혁이는 오후에 형하고 오목을 또 둘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형제는 아침 운동이라도 마친 것처럼 개운한 표정으로 다시 각자의 자리로 갔다.



매사가 게임이고, 내기인 아들들.

마냥 즐겁고, 단순한 너희의 삶이 부럽다.

너희도 언젠가 오늘을 그리워할 날이 있겠지.

그때까지 실컷 즐겨라,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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