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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y 06. 2020

[오늘을 남기다] 추억은 추억으로

매년 5월 초의 연휴는 시댁에서 보낸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힘들 줄 알았는데, 다행히 조금 잠잠해진 틈을 타 다녀오기로 했다.

날씨가 많이 풀려 네 식구 2박 3일의 옷 가방은 가볍게 준비했다.

이번 긴 연휴를 보내는 마음은 다들 같겠지라는 생각에 다음날 새벽에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새벽 5시 비몽사몽 한 몸을 이끌고 아이들과 난 남편의 뒤를 따랐다. 생각보다 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5시간 걸려 시댁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으려고 옷가방을 찾았다.

이런! 지난밤에 열심히 챙겨둔 옷가방을 안 갖고 왔다. 몸만 간신히 일으켜 세워 남편 뒤만 졸졸 따라 나온 거다.

할 수 없이 시장으로간단히 몇 가지 옷만 사러 나갔다.


시골 시장은 언제나 편안하다. 초등, 중학교 시절을 시장 근처에서 보낸 남편은 추억이 서린 곳곳을 다정하게 이야기해준다.

“여보 떡볶이 먹고 갈까?”

“배가 이렇게 부른데 무슨 떡볶이?”

우린 어머니가 마련해둔 나물들에 밥을 한 그릇 비우고 온 참이다.

“그래도 조금만 먹고 가자. 내 추억이 있는 곳이야.”

남편은 내 손을 끌어 시장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 끝에 떡볶이 집 3개가 쪼르르 있었다. 가운데 가게의 의자에 앉았다.

가게 맞은편에 할머니가 나물을 늘어놓고 팔고 계셨다.

“저기 우리 할머니 자리였는데. 학교 끝나고 할머니한테 오면 여기서 꼭 떡볶이 사주셨어.”

남편은 할머니를 그렁그렁 추억하며 떡볶이를 주문했다. 주인 할머니의 깊이 패인 주름은 남편이 어렸을 때에도 할머니였었을 것만 같았다.

프라이팬에 퉁퉁 불어있는 떡볶이에 물을 한 컵 붓고는 버너에 불을 붙였다.

떡볶이가 끓기 시작하자 그 위에 쪽파를 대충 2번 가위질해서 올렸다. 프라이팬을 싹싹 긁어 그릇에 담아내 주었다.

남편은 어묵도 한 그릇 달라고 했다. 어묵은 조금 큰 냄비에서 일 인분만 작은 냄비로 덜어 떡볶이와 같은 방법으로 끓였다. 마지막에 쪽파를 올리는 것도 같았다.

떡볶이는 아무 맛이 없었다. 짜지도 싱겁지도 맵지도 달지도 않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맛을 추억하자며 함께 온 남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할머니 얼굴을 보니 맛은 상관없었다. 남편 옆구리를 찌고 그냥 먹으라고 복화술을 했다.   

어묵을 먹었다. 드디어 맛이 느껴졌다. 쉰 맛이었다. 이건 그냥 먹을 수 없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아프면 안 되니까.

떡볶이만 비우고 일어났다. 떡볶이와 어묵 값 5000원을 냈다.


“미안.”

남편은 머쓱해며 내 어깨를 끌어당겼다.

“뭐가 미안해? 여보의 추억 덕분에, 할머니 떡볶이는 비우셨잖아.”

난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추억은 추억으로 있을 때

아름답고

멋지고

맛있는 것이다.


우린 오늘 우리만의 웃픈 추억을 만들었다.


20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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