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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중 달리기

한심한 레이스

어제는 초록이와 함께 달리기를 하려고 했다. 화요일과 목요일에 같이 뛰자고 했다. 초록이는 이제 달리기를 시작하는 단계라 8분 걷고 2분 뛰기를 6세트 하기로 한 날이다. 퇴근해서 부랴부랴 집에 오니 7시 26분. 초록이가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잽싸게 옷을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초록이도 밥을 다 먹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표정이 영 별로다. 


문 밖을 나가면서 


- 아빠, 오늘 안뛰면 안돼? 나 생리통있어

+에이 그러지 말고 뛰자.


하면서 밖을 나섰다. 1층으로 내려와서 나갈 준비를 하는데,

- 아빠 신발 안사줘도 되니까, 오늘은 안뛰고 싶어.


이 이야기를 들으니, 오늘은 같이 뛰면 안되겠다 싶었다.

+ 그래, 그러면 오늘은 뛰지 말고, 목요일날 뛰자. 목요일날 2분 8분할까? 

- 1분 9분할래. 

+ 그래, 그러면 오늘은 들어가. 잘 쉬고 목요일날 뛰자


아이를 올려 보내놓고, 혼자 뛰기로 했다. 3년째 아킬레스가 아파서 올해부터 치료받고 있다. 가능하면 뛰지 않고 걷기만 하고 있다. 그래도 뛰고 싶은 날이면 6~7분 페이스로 천천히 뛴다. 이렇게 몇 달을 보내니 불안한 마음이 있다. 예전처럼 다시 뛸 수 있을까. 다행히 아킬레스는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불편함과 통증은 있다. 확실히 뛰고 난 다음 날은 아킬레스가 붓고, 통증이 생긴다. 울트라마라톤을 하는 60대의 한의사 선생님은 이번 치료를 잘 받으면 다시 잘 뛸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 한의원도 올해 초에는 1주에 한번씩 갔다가 2월부터는 2주에 한 번, 지난 번 부터는 3주에 한 번씩 와도 좋다고 했다. 아킬레스 부상이 회복되고 있는 것 같다. 


성북천을 달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무리하지 않고, 7분 페이스로 달렸다. 아킬레스의 통증으로 별로 느껴지지 않고, 움직임도 괜찮았다. 한동안 빨리 뛰지 않아서, 심폐능력은 좀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10분쯤 지났을까. 한 러너가 나를 앞지른다. 대략 5분 페이스 정도 되는 것 같다. 무리하지 않고, 따라만 가보기로 했다. 10미터 정도의 거리만 유지하고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성북천 시작점인 한성대 입구까지 따라갔다. 여기가 반환점이다. 반환점에서 그 러너 분은 다시 돌아서 뛴다. 나는 20미터쯤 더 가서 돌았다. 그러고 나니 한 4~50미터 쯤 차이났을 것 같은데, 앞에 보이지는 않았다. 다시 속도를 좀 줄였다. 그렇게 한 5분쯤 지났을 때 저 앞에 그 러너가 보인다. 그 분은 멈춰서서 시계를 만지고,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러너 옆을 지나쳤다. 그렇게 또 몇 분 정도 달렸다. 다시 그 러너가 나를 앞질렀다. 이번에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내가 추월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킬레스가 걱정 되기도 했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며 뛰기로 했다. 속도를 점점 높였다. 이내 그 러너를 따라잡고 추월했다. 그 러너도 나를 추격한다. 뒤에서 발자국 소리와 거친 호흡소리가 들린다. 나는 조금 더 속도를 냈다. 그 러너도 속도를 내는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그도 이 상황을 레이스로 인식하는 것 같다. 레이스라는 생각이 들자, 나도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들리는 호흡소리를 들으며 거리를 유지했다. 가까이 오면 좀 더 속력을 내고, 멀어지는 것 같으면 속력을 줄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호흡 소리는 멀어졌다. 이럴 때는 더는 못 쫓아오도록 한동안 속도를 유지해주고 거리를 벌려놓는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한심한 레이스가 끝났다. 다시 아킬레스가 염려가 됐다. 또 평정심을 잃고 오버했다. 참 못났다. 목요일날 초록이랑 2분뛰고 8분 걷는 것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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