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나, 자연을 모르고 사는 것처럼 나이가 드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나는 이제 산술적으로 서른다섯 살의 중년이 되었다. 다만 그 숫자는 언제 들어도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는다. 스물아홉이 되었을 때도, 결국 서른이 되었을 때도 그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지만 나는 아직도 나이를 실감하지 못하겠다. 내가 유일하게 그 실체를 깨닫게 되는 것은 지금 19학번에게 나는, 내게는 89학번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왔을 때 상상하던 89학번은 머리가 희끗하고 남이 구워주는 고기를 먹으며 사춘기 아들을 걱정하는 아저씨였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고는 나이가 드는 것의 정체를 아직은 잘 모르겠다. 수능이 끝난 직후 이사를 하며 빈 집을 친구들과의 아지트로 만든 적이 있었다. 추운 겨울 전기장판과 빗자루를 싸매고 문현동으로 향하던 그날의 나는 여전히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다. 그 아이가 결혼을 했고 그 아이가 아이를 가졌다. 마치 그 아이가 양복을 빌려 입고 89학번이 된 것처럼 어른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최대의 지식이 2008년 군대에서 배운 한글 97이라는 점에서 지식의 축적으로도 나이를 실감하기 쉽지 않다.
그러다가 내가 중년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예전에는 인턴이 회사에 오면 오래전 신림동이 생각났다. 종점으로 복귀하는 버스들처럼 잠을 자기 위해 하숙집으로 향하던 그 비루한 언덕이며 쓸쓸한 표정이 인턴과 함께 내게 인사했다. 불확실한 미래와 다투고 있을 그 친구들의 수줍은 인사가 그날의 신림동처럼 측은했다. 그런데 이번에 인턴이 왔을 때는 서하가 내게 인사를 했다. 아빠 이만큼 컸다고. 아빠처럼 멀리 돌지 않고 한 번에 왔다고. 그 명랑하고 슬픔이 없는 인사가 기특하여 나도 모르는 새 중년의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나는 서하를 키우면서 많이 변하게 될 것 같다. 아빠 엄마가 이름을 잃었듯이 지금까지의 나를 조금씩 잃어가게 될 것 같다. 늘 아무렇지 않은 문현동 친구들과의 만남도 특별해지는 때가 올 것이다. 아빠가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처럼. 그것이 슬픔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리움이 될 수는 있다. 문현동과 신림동의 나는 더 이상 나의 옛날을 형성하지 못할테니까. 그래서 기록하기로 한다. 나의 현재이면서 나의 옛날을. 그래서 빈집의 아이는 양복을 입고 한글 97로 쓰기로 한다. 나이 듦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