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이라는 정체성
어쩔 수 없이 부대끼며
"너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거 싫다며? 근데 왜 이 북적대고 시끄러운 서울에 살아?"
첫 회사를 다니던 시절, 친구와 만날 때마다 이 지긋지긋한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다 친구가 이렇게 물어본 것이다.
"난 귀신이 무서우니까! 시골 같은 한적한 곳에서는 못 살아."
그땐 그냥 그렇게 얼버무리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왔고, 도시를 벗어나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복작대며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가족 같았던 회사에서
개인주의적인 회사로
가족 같아서 감옥 같았던 첫 회사를 그만두고 직장을 옮겼다. 두 번째 직장의 분위기는 첫 직장과는 완전히 달랐다. 첫 회사는 남자 직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업무 강도가 센 편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사내정치가 심했다. 업무로는 존재를 보여주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지금 다니는 곳은 여자 직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물론 여전히 팀장 이상의 직책자 중 여성은 손에 꼽을 정도이지만 팀원들의 남녀 비율은 5:5 정도이다. 게다가 내가 속한 부서는 전체 인원 70명 중에 남자가 팀장을 포함해 5명이다. 내 일터의 남녀 비율은 90% 이상이 남성이었다가 90% 이상이 여성이 되었다. 온라인 마케팅 업무의 특성상 자잘한 업무들이 많고 시간을 다투어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여성 비율과 업무 집중도가 높기 때문인지 사내정치가 이전보다 덜한 분위기다. 꽤나 개인주의적이고,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업무 시간 중에 커피를 마신다거나 업무를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서 술을 마신다거나 하기에는 다들 너무 바쁘고 지쳐있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함께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저녁을 먹는 무리들이 있었지만, 나는 애써 가까이하지 않았다. 가끔 외로웠지만, 상처 받는 일은 없었다.
날 가장 힘들게 하는 곳에서
가장 위로를 받다니
남편이 해외로 2년 간 파견 근무를 가게 되었다. 평생 혼자 살아본 경험이 없었다. 남편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혼자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이 세상천지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랄까. 남편이 떠나던 날, 배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 퉁퉁 부은 눈을 감추지 못해 얼굴을 푹 숙이고 출근해 사무실에 앉았다. 뒤따라 들어온 선배가 인사를 하면서 내 눈을 봤다.
"괜찮아? 잘 배웅하고 왔어?"
그 순간 울컥하고 터져버렸다. 선배는 후다닥 책상에 가방을 올려두고 내 손을 잡고 나왔다. 회사 로비에 앉아서 엉엉 우는 나를 그냥 바라봐주었다.
"평소에 힘든 내색 안 하길래, 강한 줄 알았는데."
"엄마한테 일부러 전화 안 했어요. 너무 울 것 같아서."
"알지. 나도 첫 아이 유산하고, 엄마한테 전화 못했어. 오히려 시어머니 전화받고 펑펑 울었다."
나는 처음부터 이 회사에서의 모든 시간을, 이 회사에서의 모든 관계를 좋아하지 않았다. 첫 회사를 관두고 회사는 그저 돈 벌기 위해 다니는 거라고 생각했다. 절대 회사에서 마음 내어주고 다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회사에서 회사 사람한테 가장 큰 위로를 받았다.
친구도, 엄마도 해주지 못했던 위로였다. 그들은 위로를 해 주기에는 물리적으로 멀리 있었고, 그래서 내 마음을 세심히 들여다볼 수 없었다. 회사에서 회사 사람들과 하루 종일 부대끼며 지내는 게 지긋지긋했다. 그런데 정작 가장 힘들 때도, 가장 기쁠 때도 결국 내 옆에 있는 건 회사 사람들이었다.
혼자 일하면 좋을까
첫 회사 후배 H를 만났다. 내가 퇴사하고 그 이후로 못 봤으니 4년 만이다. H는 4년 전부터 학원 강사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드디어 작년부터 영어 학원 강사로 일하다가 몇 달 전에 공부방을 차렸다.
"혼자 일하니까 어때? 좋은 점도 있고 힘든 점도 있지?"
"그렇죠, 뭐. 혼자 일하니까 아쉬운 건, 같이 일 얘기할 사람이 없다는 거. 커피 한잔 하면서 힘든 일 있었던 거 얘기하고 그런 걸 못 하니까. 좀 답답하죠. 맨날 애들 상대하고, 학부모 맞춰주고, 혼자 그냥 감당해야 하니까."
나는 혼자 일하는 걸 즐기는 성격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여전히 회사 생활을 하는 게 웃기지만. 퇴근 후의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그렇다. 요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요리를 하거나. 내가 즐기는 취미들은 모두 혼자 하는 것이다. 운동을 해도 누군가와 함께 합을 맞추어야 하는 운동을 즐기지 않는다. 내 속도와 내 몸 상태에 맞추어 내가 하고 싶은 부분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까지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혼자 소소하게 요리와 베이킹을 하면서 '혼자서 돈을 벌기 위한 밑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말 궁금해질 때가 있다. 혼자 일하면 좋을까? 정말, 지금보다 더 나을까?
소속되고 싶은 마음
평생을 소속되기 위해 살아왔다. 학교 다닐 때는 좀 더 좋은 대학에 소속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후에는 좀 더 좋은 직장에 소속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서도 더 나은 직장에 들어가고 싶었다.
소속감이 주는 편리함과 안정감을 알기 때문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동물적으로 안다. 무리에서 이탈하면 얼마나 힘들어질지. 사회는 소수자를, 약자를, 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해 주지 않으니까. 그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권리를 아무렇지 않게 빼앗으니까.
회사원이 아니라,
그냥 나
작년 겨울, '트레바리'라는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 첫 모임에서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다니는 회사와 나의 이름을 말했다. 어딜 가든 나는 OO홈쇼핑 OOO였으니까. 사외 교육을 받을 때도,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을 때도 그랬다. 대학 시절, 연합 동아리에서 스스로를 OO대학 OO학과 OOO으로 소개하듯이.
내 소개를 마치고, 차례로 한 사람씩 자기소개를 했다. 모두 어느 직장에 다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는지, 어떤 계기로 독서 모임에 참여했는지 이야기했다. 그 순간 너무 놀랐다.
나는 늘 회사를 싫어하고, 회사원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부정해왔는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회사원으로서의 나를 나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나를 설명하기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남한테가 아니라 나한테. 내가 나 스스로를 이해하는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나도 모르게 '직업이 나를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그래서 나와 맞지 않는 회사와 동료들 속에서 한없이 불쾌했다. 이들 사이에서 나는 나를 잃어간다고 생각했다.
딱 맞는 직업을 찾아야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직업에 목을 매는 것도 정형화된 삶의 방식일 따름이다.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는 직업이 아니라 순간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거기에 자기답게 반응할 줄 아는 능력이다.
- 당신의 행복이 어떻게 세상을 구하냐고 물으신다면, 콜린 베번
나는 회사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회사원이기도 하고, 홈베이커 이기도 하고, 아내이기도 하고, 딸이기도 하고, 노래 듣는 걸 좋아하고, 요리를 즐기고, 책을 자주 읽는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걸 좋아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함께 일하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아무 하고나 일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아직 회사원이다. 그러나 언젠가 다른 곳에 소속될 수도 있고, 독립적으로 일을 할 수도 있다. 어느 기간은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회사에서 불편하게 부대끼며 일하기도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위로를 받기도 한다. 원치 않는 회식자리에서 인상을 찌푸릴 때도 있지만, 고마운 후배에게 점심을 사주며 그들의 마음을 얻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혼자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혼자 일하면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겠지. 지금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혼자 일하는 사람들을 동경하지만, 나중에는 혼자 일하면서 함께 일하던 때를 그리워할 지도.
그냥, 아직은 회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