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란 걸 좋아할 수 있을까
"지금 하시는 일 좋아하세요?"
"아니요. 그냥 뭐, 먹고살려고 하는 거죠.
"그럼, 처음에는 왜 이 일을 선택했어요?"
가만히 떠올려보면 시작은 지금과 달랐다. 대학생 시절, 나는 드라마에 나오는 직장인들을 동경했다. 열정적이고, 똑똑하고, 인간미 넘치는 주인공을 보며 나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미생'이 나오기 전, 그 시절의 드라마는 지금보다 현실성이 부족했다. 회사원이 되는 것이 꽤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정에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회사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란,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으로 쌓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영어, 경제 상식, 시사 이슈 같은 것들을 공부했다. 새로운 상품들이 가득한 곳에서 '요즘 유행은 이거죠.'라고 소개하는 일이라면, 25년간의 준비 기간이 그럭저럭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원하던 쇼핑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일을 좋아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좋아 보여서 시작한 일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내가 철저하게 틀렸음을 깨달았다. 첫 회사에서 처음 퇴사란 것을 해봤다. 다른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월급이 그리웠다. 다시 부랴부랴 회사에 들어갔고, 다시 또 견딜 수가 없어졌다. 취미를 시작했다.
베이킹이라는 취미가 생기고, 인스타그램에 #베이킹 이라는 태그를 팔로우했다.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베이킹을 두 번째 업으로 삼고 살고 있었다. 동경과 호기심이 뒤섞인 채로, 퇴근하고 소파에 앉아서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유행처럼 그들은 #좋아서하는일 이라는 태그를 자신의 사진에 달아두었다. 좋아서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충족감, 행복감이 느껴졌다. 한참을 부러워했다. 매일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과로 #좋아서하는일 을 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보았다.
정말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이렇게 새벽까지 케이크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구나. 대단하다. 내가 퇴근하고 베이킹을 했다고 하면, 친구들은 "퇴근하고 뭔가를 한다고? 대단한데?"라고 말한다. 그러나 #좋아서하는일 의 주인공들은 새벽까지도 이렇게 열심히구나. 이 사람들은 정말 후회한 적이 없을까?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후에도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내일이 기다려질까?
늘 그렇듯 인스타그램을 넘기며 하루를 마무리하다가, 어느 파티시에가 #좋아서하는일 태그에 대하여 올린 글을 봤다. 그는 #좋아서시작한일 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했다. 좋아서 시작했지만, 모든 일이 다 그렇듯 몸도 마음도 힘든 순간이 분명히 있다고, 그저 좋아하는 마음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은 취미이지 일이 아니라고. 이 일을 지속해나가는 데에는 좋아하는 마음 외에도 책임감, 절실함, 일에 대한 사명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아마도 그는 #좋아서하는일 이라는 표현에서 직업인으로서의 고단함이 느껴지지 않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럴 만하다. 좋아서 시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주 그런 말은 듣는다.
그래도 넌 네가 좋아하는 일 하고 살잖아.
마지못해 시작했던, 뭣 모르고 시작했던, 좋아서 시작했던, 일은 힘들다. 무겁고, 억울하고, 지겹다. 누구나 힘든 하루를 보내는 것에는 예외가 없다. 단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그 고단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올린 글은 아마도 그 고단함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나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후회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이 선택을 이해시키기까지 부모님을 설득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었다. 지금은 아이 대신 다른 행복을 제공하고 있다. (주로 돈). 게다가 여러 어른들에게 (주로 꼰대들에게) 늘 부정적인 말들을 듣고 산다. 그러니 그 시간들이 억울해서라도 '후회한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대신 부부 둘이서 얼마나 일상을 즐길 수 있는지 하나하나 체험하고, 그것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뭐 이런 마음은 아이를 낳은 친구들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애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도, 절대 '후회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어차피 되돌릴 수도 없거니와, 아이라는 소중한 존재에 대한 죄책감, 나는 경험할 수 없는 아이라는 존재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이다.
#좋아서하는일 태그를 올린 사람들은 어쩌면 이런 마음이 아닐까. 선택은 이미 했고, 내가 선택한 이 일에 대한 소중한 마음, 이 일을 선택하기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 감정 소모를 생각하면 도저히 '후회'라는 단어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좋아서하는일 태그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세뇌 같기도 하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괜찮아."라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대개 이 유형일 것이다.
좋아서 시작했으나, 현재는 좋아하지 않음
좋아서 시작했고, 현재도 좋아함
좋아서 시작하지는 않았으나 현재는 만족함
좋아서 시작하지도 않았고, 현재도 좋아하지 않음
그럼 결국 일이란 좋아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잘 맞고 안 맞고'의 문제일까? 그러나 좋아하면 잘 맞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역시 좋아하고 말고의 문제일까?
결국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옮겨 다니다가, 어차피 일이란 좋아하건 아니건 힘드니까 돈만 벌면 되는 걸까? 까지 이른다. 다시 원점이다. 일이란 게 다 그렇지 뭐!
좋아서 시작해서, 지금도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며 사는 분들께 묻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건 어떤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