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단 Oct 08. 2019

나의 안부를 묻는 당신에게

당신은, 잘 지내시나요?

평소보다 일찍 출근한 아침, 한산한 로비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한다. 푹 숙인 얼굴에 올려본 눈으로 서로를 확인하고는 급히 입꼬리를 올려 인사를 건넨다.


어,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인사를 건네고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럴 때, 괜히 궁금하지도 않은 안부를 묻는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이 질문을 건네면, 이상하게 잘 지낸다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


똑같죠 뭐, 지겹죠 뭐, 하하...


이때 잘 지낸다는 말은 마치 암묵적으로 합의한 룰을 어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막 한가운데서 총을 든 두 사람이 만났을 때 해야 하는 행동을 떠올려보자. 누군가 한 명이 먼저 외친다.


총 내려놔! 나도 총 내려놓을 테니까.


왼 손바닥을 상대에게 보여주고, 자세를 낮추어 오른손에 들고 있던 총을 바닥에 놓는다. 그러면, 상대도 총을 내려놓는다.


요즘 어떠냐는 질문에, 늘 똑같이 못 지낸다는 말은 내가 총을 내려놓을 테니 당신도 내려놓으라는 신호다. 우리는 서로의 적이 아니니까, 상대를 위협하거나, 도발하지 말자는 사인을 주고받는다.


- 대리님은요? 거기도 요새 힘들죠?
- 그렇죠, 뭐... 새로 오신 상무님이 워낙 열정이 넘치시잖아요.


이 정도 인사면 충분하다. 이제 자연스럽게 서로 갈 길을 갈 타이밍이다.


잘 지낸다는 말은 자연스럽지 않은 걸까.

우린 왜 가끔 잘 지낸다는 말이 어색할까.


그런가 하면,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에게는 잘 지낸다는 말이 쉽게 나온다. 카톡으로 잘 지내냐는 연락이 오면, 늘 그럭저럭 별일 없이 잘 지낸다고 답한다.


생각해보면, 같은 집단 사람들한테는 힘든 내색을 먼저 하고, 집단 밖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척한다. 집단 안에서는 모두 같이 해결해야 할 하나의 큰 일을 조금씩 나누어하기 때문에, 누구는 더 힘들고 누구는 덜 힘들면 문제가 된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너는 괜찮다고? 너 일 안 하는구나? 넌 일 못하는구나? 이렇게 흘러간다.


집단 밖의 사람들은 어차피 내가 얼마나 힘들던 관련이 없다. 그러니까 애써 잘 지내는 척을 하게 된다. 난 잘하고 있고, 그래서 별 탈 없이 안정적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잘 지내냐는 의미 없는 안부는 꽤 의미가 있는 셈이다. 안부 묻기를 통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고 있다. 나는 당신과 같은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지, 아닌지.


당신은, 잘 지내시나요?

이전 02화 소속되고 싶은 마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