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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Apr 24. 2022

체력 기르기보다 중요한 것?

나는 체력이 정말로 안 좋다. 이 말을 하면 모두 안 믿는다. 퇴근하고 벌이는 수많은 일들은 도대체 뭐냐고 묻는다. 체력이 좋은 것과 체력을 잘 쓰는 것은 다르다. 나는 체력이 정말로 안 좋다. 그렇지만 내 체력을 쓰는 법을 안다. 체력의 바닥을 경험한 후 알게 되었다. 체력을 다독이며 어린애 다루듯 다루는 법을.


체력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5  사건떠올려야 한다. 그때, 나는  인생이 끝나야 한다고 믿었다.


***

9시 출근 8시 퇴근을 했다. 이상적인 9 to 6 는 아니었지만 최악의 워라밸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주 52시간제가 도입되기 전 어느 회사나 이 정도는 일했다. 물론 주말에는 쉬었다. 누가 봐도 일상이 무너질 만큼 힘들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주말에 운동을 할 수도 있고 야근하고 집에 돌아와 충분히 잠을 잘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절 나는 매일 오후 회사 책상에서 앉아 이대로 인생이 끝나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속으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죽어버려. 죽어 “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소화불량으로 인한 두통이 찾아왔다. 타이레놀을 먹고 일을 좀 더 하다가 6시가 되면 밥을 시켜먹거나 로비에서 샌드위치를 사 와서 자리에서 먹었다. 안 먹는 날도 있었다. 그러고 한두 시간 더 일을 하다 보면 시야가 흐려졌다. 라섹 수술을 한 이후로는 피로가 눈으로 왔다. 더 이상 화면을 볼 수 없을 때쯤 회사 밖으로 나섰다. 회사 생활을 한 지 4년 차였다.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회사 생활은 여전히 버거웠다. 몸도 마음도 좀처럼 회사에 적응할 수 없었다. 그러다 정말로 끝이 찾아왔다.


새벽에 극심한 통증으로 눈을 떴다. 오른쪽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만 움직이려고 해도 사방에서 바늘이 오른쪽 몸 전체를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억울했다. 왜 나는 남들처럼 살 수조차 없는 걸까? 왜 겨우 이 정도로 내 몸은 무너져내리는 걸까. 그날 새벽, 더 이상 남들과 똑같은 일상을 살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막막했다. 일단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하려면 일을 하긴 해야 했다. 누워서 쉴 집, 삼시세끼 먹을 음식을 살 돈이 필요했다. 나에게 회사는 꽤나 효율적인 돈벌이 수단이었다. 시급을 따졌을 때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당장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생각나지도 않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어쩔 수 없었다.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는 상태로 내 몸을 만들어야 했다. 1년을 목표로 잡았다. 1년 동안 어떻게 해서든 내 몸을 회사 생활을 버텨낼 수준으로 끌어올리자고 다짐했다. 영양제를 주문하고 동네 한의원에 가서 한약을 지었다. 요가원을 찾아다녔다. 웬만한 서비스는 다 있는 홍대 근처에 사는 덕분에 잘 맞는 요가원을 금방 찾았다. 다이어트를 위한 요가원이 아니라 명상, 휴식, 테라피를 전문으로 하는 요가원이었다. 나처럼 몸이 무너진 사람들을 재활하는 프로그램인 <휄든 크라이스> 교육을 1:1로 받았다. 10회에 120만 원짜리 비싼 수업이었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등록했다.


휄든 크라이스 교육은 1시간 내내 누워있는 수업이었다. 가만히 누워서 몸 구석구석을 아주 조금씩 움직이며 신체를 자각하는 훈련을 했다. 내 몸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리고 스스로 회복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뇌의 가소성에 대해서 공부했다. 휄든 크라이스를 통해 배운 것은 <알아차림>이었다. 인간의 몸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강인했다. 조금씩 조금씩 몸과 마음을 자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여전히 능숙한 요기니는 아니지만 꽤 힘든 요가 동작도 거뜬하게 해낸다. 맨 처음 요가원에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제 몸이 제 꺼 같지가 않아요. 가누어지지도 않아요." 이제는 내 몸이 내 것이라는 걸 안다. 내 몸이 나의 마음과 호흡, 움직임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저항하는지 안다. <알아차림>을 통해 내 몸과 마음을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음식을 먹으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안다.

지금 내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안다.

더 욕심부리면 몸과 마음이 균형을 잃고 휘청일 것을 안다.

괜히 상황을 확대 해석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근육 운동 후 몸이 얼마나 단단해지는지 안다.


이 <알아차림>으로 일상에서 흔들릴 때 넘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몇 가지 루틴과 원칙을 만들었다. 규칙은 스스로를 얽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다.



/

지친 것과

배고픈 것 구분하기


많이 먹는다고 체력이 좋아지는 게 아니다. 질 좋은 음식을 적당히 먹어야 한다. 몸과 마음이 소진될 때 배고픈 것과 지친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정신없이 음식을 먹다가 정신 차려 보면 이미 배가 부르다 못해 더부룩하고 심지어 위가 아프기까지 하다. 퇴근하고 자주 이렇게 음식을 '해치웠다.'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퇴근 후 음식을 먹기 전 차를 마시며 명상한다. 우선 스스로를 다독여주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자, 이제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자." 그렇게 달래주고 나면 음식에 화풀이를 덜 하게 된다.



/

잠은

충분하게


몸이 피곤할 때는 계획을 어겨도 괜찮으니 푹 쉬게 해 준다. 잠은 그 어떤 보상보다 효과가 좋다. 머리가 멈출 만큼 일을 했거나, 몸을 지나치게 썼다면 나를 충분히 재워야 한다.



/

어깨가 말릴 때

스스로를 꺼내 주기


일터에서는 늘 분초를 다퉈 일하게 된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내 결과물을 정해진 시간 안에 동료에게 넘겨야 한다. 예외적인 사건 사고가 터져도 일은 진행되어야 한다. 밀라논나도 말하지 않던가, show must go on 이라고. 그런 마음으로 일하다 보니 노트북 앞의 나는 어깨가 말린 채로 호흡을 멈추어 미간을 찌푸리고 목을 구부정하게 쭉 내밀고 일한다. 그때, 내가 그렇게 일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잠깐, 심호흡을 한다. 아무리 바빠도 1분은 쉴 수 있다. 그 1분의 차이로 몸이 무너질 수도 있다.



/

나만의 끊어내기

방법 찾기


월/수/금 주 3회 요가원에 간다. 운동할 시간이 되면 그만 일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이 다 안 끝났으면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다시 하면 된다. 운동하라고 스스로를 강요하고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일에서 끄집어내 생각를 전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요가원의 조명과 향, 노랫소리, 동료 요기니와 나누는 호흡은 일터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경험을 준다. 잠깐 다른 세계에 다녀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스트레스를 풀어보겠다고 하는 모든 활동의 핵심이다. 여행도, 맛집 투어도, 술자리도 모두 목적은 같다. 그중에 가장 나에게 잘 맞는 방법으로 '요가'를 선택했다.


나의 루틴과 원칙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어법이 있다. 바로 <스스로에게 해준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 표현은 이다혜 작가의 책에서 빌려왔다. 이다혜 작가가 나를 내 딸처럼 여기라는 말을 했는데 크게 와닿아서 자주 기억하려고 한다.


"당신 자신을 당신의 딸이라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금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 스스로에게 사주고 싶은 것... 어떻게 달라지나요? 스스로에게 자학하며 던지는 말을, 딸에게라면 하고 싶으세요? 지금 스스로에게 과분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딸에게라면 아끼고 싶으신가요? 나는 내 딸이다. 내가 사랑하는 내 딸이다 생각하고, 마음이든 물건이든 어떻게 해주고 싶은지 생각해보세요."
-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이다혜



이다혜의 작가의 애정 어린 질책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때부터 늘 나를 내 딸처럼 귀하게 여기려고 노력한다.


내가 내 딸이어도 이렇게 허겁지겁 음식을 먹게 할 건가?

내가 내 딸이어도 잠을 못 자고 시간을 허비하게 할 건가?

내가 내 딸이어도 이렇게 질책하고 몰아세울 건가?


나는 내 딸이다. 나는 나의, 친애하는 나 자신이다.


스스로를 내 딸이라고 여기며 건강한 음식, 마음, 운동, 관계, 일을 만들어나갔다. 그 터널의 끝에서 쓴 책이 <매일매일 채소롭게>였다. 사람들은 이 책 소식을 듣고 채소와 음식 이야기를 했다. '요리 좋아하나 보다." "비건 음식 좋아해?" "오늘 장 보러 갔다가 네 생각났어." 책을 내고 한동안은 스스로를 <직장인 채소 에세이스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말한 채소롭다의 표현은 식생활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채소롭다는 것은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었다. 작년 <매일매일 채소롭게> 출간을 앞두고 출연한 경인방송 인터뷰 한 대목을 옮겨본다.


채소를 먹으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내재된 힘을 얻는다는 감각이 생겨요. 모든 채소는 자신에게 맞는 계절이 있어요. 그래서 제철 채소를 만나면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되고, 쳇바퀴 같은 일상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계절을 살아낸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거죠. 지금 우리가 보내는 일상이 ‘어쩔 수 없이 버텨야 하는 현실’이 아니라 ‘내가 이끌어 가야 할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달라지는 게 많아요. 제로웨이스트나 채식에 대해서 막막함을 느끼고 지레 포기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이미 세팅된 환경’으로 보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만,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낸다고 생각하면 의외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요.

내가 만들고 싶은 삶의 모습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삶, 매일매일 채소로운 일상은 그런 의미입니다. 채소로운 일상 에세이는 채소를 통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일상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입니다.

- 경인방송 <사람과 책> 인터뷰 중에서


5년째 요가를 하고 채소 가득한 건강 집밥을 먹는다. 단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마트에서 파는 과자가 아니라 직접 만든 디저트를 먹는다. 그래서 내 체력이 좋아졌을까?


아쉽게도 아니다. 여전히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이 적다. 성공한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알차게 하루를 보낸다는데 성공한 사람은 절대 될 수 없나 보다. 나는 적어도 8시간은 자야 한다. 12시에 잠들면 8시에 일어나고 1시까지 이런저런 작업을 하는 날이면 다음날 여지없이 9시가 되어야 눈을 뜬다.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를 하기 전에는 무조건 11시 전에 잠을 잤다.


여전히 아쉬운 체력을 달래며 살고 있다. 똑같이 운동을 해도 체력이 금방 느는 사람이 있고 더디게 느는 사람이 있다. 한의원 선생님은 얄궂게도 나에게 "운동해도 체력이 잘 안 느는 체질"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체력을 잘 쓰는 수밖에. 체력을 쓰는 것은 마음을 쓰는 것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아픈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체력이 쉽게 늘지 않는 나는 마음 쓰는 법, 몸을 알아차리고 달래주는 법을 훈련하면서 약한 체력을 보완한다.


늘 바쁘게 살면서 "시간이 없어 시간이!"를 외쳤다.

그러나 삶에 문제가 생길 때, 범인은 시간이 아니라 체력이었다.


체력으로 크게 다치고 난 후 이번에는 "체력이 부족해 체력이!"를 외치며 살았는데

결국 문제는 체력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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