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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Oct 30. 2022

#6. 필요한 것을 아는 것

나도 집을 사고 싶어

 

사실 나는 '보금자리를 운영하는 권리'라는 게 누구에게나 기본권에 가까운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비오는 날 곰팡이가 지도를 천장에 그리는 것을 지켜보며, 빌라에 있는 주차장 자리 중에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는 이유로 눈치를 보며, 하루 빨리 작지만 내 생활에 맞는 집을 사야겠다고 생각한 날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보니 현실은 달랐다. 현대 사회에서 보금자리를 운영하는 권리란, '지불 능력이 되는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고급 재화일 따름이었다. 아니 오히려 '소유할 만한 여유 자금이 있는 중장년 계층이나, 공급이 많을 때 주택을 저가에 매수할 수 있었던 운이 좋은 일부 사람'들이 차지한 특권에 가까웠다. 그런 자본주의 생리에 의하면, 나는 현금이 없으니 집을 살 처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이제 막 청년 시절을 지나온 1인 가구가 '수도권 집값'을 마련할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은 그렇다 쳐도, 청년이 장년층이 되도록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막연히 해결될 문제도 아닌 것 같았다. 나처럼 부모에게 증여 받은 자산이 없거나, 다른 가족과 함께 살지 않아서 주거 비용을 공동 책임질 경제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은 1인 가구에게 그야말로 "몇 억"은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2~3년 월급을 더 모은다고 해서 지금 없는 몇 억의 종잣돈이 갑자기 생길리도 만무하잖아.


이쯤 되니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럴 바에야 그냥 월세나 전세를 계속 살면 어떨까? 솔직히 따져보면 주거의 행복이 등기부등본에만 있지는 않잖아?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잠자리의 아늑함, 나를 위해 천천히 차려 먹는 소울 푸드의 쉼표 하나는 집에 있는 나만의 시간을 데워주는 소중한 기쁨들이다. 


요새는 인테리어 가구나 소품도 예쁘고 좋은 게 워낙 많다보니, 집을 빌려 살아도 나만의 취향을 듬뿍 담아 고유한 공간을 꾸미고 누리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들 역시 엄연한 독립과 자립의 형태이기도 하고. 실제로 돈이 엄청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고급 월셋집에 살면서 현금도 굴리고 윤택하게 살기도 한다.


"그래, 어쩌면 나의 부동산을 향한 이런 머리 씨름은, 

또 하나의 금융 중심적인 욕망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라."


그러나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마음 속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 집에 대한 욕망은 더욱 합당하고 간절한 것으로 다가왔다. 자본주의는 내게 말했다. 돈을 더 모아서 이 거래에 걸맞는 자격을 갖추라고. 그러나 한편으론 바로 그런 자본주의라는 녀석이야말로, 물가상승 속도와 함께 이 시대의 집값을 계속해서 올려 놓을 게 뻔했다. 게다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산의 소유'가 유일한 무기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거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로 자립을 이어나가는 일이 쉽기만 할지도 의문이었다.


게다가 나는 당시만 하더라도 당장 결혼 계획이 없었다. 나를 위한 경제 공동체는 당분간 없을 예정이었다. 게다가 부모에게 증여받을 재산은 1원도 없었다. 30년 간 발견되지 않았던 특별한 운과 재능이 나에게 계급상승을 가져다 줄거라고 믿을 만큼 바보도 아니었다. 분명한 건 하나였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결코 '남의 집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자유'라는 것은 얻을 수 없다는 것 말이다. 


계산이 나왔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영영 집을 빌려 살아야 할지 몰라.



필요한 것을 아는 것


어쩌면 지금 필요한 건 포기나 수용이 아니라 '공부'였다. 나는 부동산 웹사이트에서 각종 지역 정보를 뒤지고, 정부 주택 담보 대출 상품들을 틈틈이 검색해보며 일말의 가능성을 점쳐 봤다. 


그래! 내가 가진 작은 현금과 미약한 신용으로도 보금자리의 행복을 사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몰라! 조금 멀거나, 많이 오래 됐을 지라도, 내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다행히도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은 누구나 좋다고 말하는 투자 물건을 차지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는 안심하고 싶었다. 최소한의 삶의 편의와 권리를 수호해줄 1인분의 영토를 갖는 게 중요했다. 여기서 그 1인분의 영토란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며 '고유한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낸 삶을 든든하게 지켜줄 '작지만 내 것이라는 게 분명한, 내 명의의 자산'이기도 했다.



'그래, 일단은 직장과 멀어져도 괜찮아.'


아이폰으로 네이버 지도 앱을 켰다.

화면에는 내가 참 좋아하는 한강이 서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 필름에 닿아 있던 검지와 중지를 반복해 좁혀 보았다.

지도 위 엷은 미소선을 닮은 한강은 자꾸만 자꾸만 작아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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