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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밍 Oct 12. 2020

잘해야 되나요?

#불안장애 직장인 8년 차 이야기

 어렸을 때부터 나는 무엇이든지 잘해야 된다고 교육받아왔던 것 같다. 대한민국 환경? 교과과정? 아니면 부모님? 딱히 그 누구도 나에게 강요지 않았고, 어떤 누구도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없다. 단지 내 자신이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그렇게 만들어왔던 것 같다.

 학생 시절에는 시험을 잘 봐야 했고, 체육활동을 하면 잘해서 꼭 이겨야 했고, 게임을 하면 잘해서 꼭 이겨야 했다. 언제부턴가 늘 잘해야만 하고 1등을 해야 하는 힘들고도 고난한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왜 1등 하는 삶이 힘들고 고난한지는 누구나 다 알 것이다. 그만큼 그 분야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세상을 잘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나는, 다행히 대학 졸업까지 어려움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어른의 삶.

 

 현재 나는 직장인의 위치에 서 있다. 나의 잘하려는 마음은 여전했다. 직장에서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상위고과를 받는 것?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 외국어를 잘하는 것? 직장에서 잘한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저것 너무나도 잘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윗사람에게 적당히 비위도 맞출 줄 알아야 했고 술도 먹을 줄 알아야 했다. 그래야 간신히 그 사람들에게 잘한다는 인정을 받으면서 나의 만족감을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만족감을 매번 채울 수 없었다. 반기의 한 번씩 누군가 나를 평가한다는 사실은 솔직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 비해 부족한 성과를 낸 다른 사람이 잘 나가는 꼴을 수도 없이 많이 봐왔다. 불평불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불평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결정적으로 나에게 7년의 시간은 너무 길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늘 잘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알 것이다. 대단한 터미네이터 같이 기계적으로 잘하는 사람이 있을 수 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회사에서의 잘함을 유지하면 어떻게 될까? 잘하면 좋다. 파트장, 팀장, 임원 올라갈 수 있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굉장히 좋아 보일 수 있다. 다른 면을 본다면 아차 싶을 수도 있다. 갑자기 팀장에서 팀원으로 내려올 수도 있을 것이고 책상이 빠져있을 수도 있다. 또한 내 밑에 있던 한참 어린 직원들이 나의 상사가 되어버릴 수 도 있다. 실제로 임원이 되기 위해 발버둥 쳐서 올라간 사람이 있지만 1년 만에 잘리기도 하고, 팀장급 사람들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들을 많이들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미래도 뻔히 그려졌다.


 그렇게 시작되었었다. 나의 불안은.


 지금 내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회사원은 책상을 빼도 멘털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정신력을 갖고 있는 부장이 가장 위너가 아닐까 싶다. '회사는 길게 봐야 한다'. '만년 부장' 이런 말들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회사에서는 멘털이 흔들리는 상황이 무궁무진하다. 분명 욕심부릴 상황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길게 가는 사람은 눈 앞에 욕심에 흔들리지도 않는다. 모든 상황을 적당히 욕심 없이 보내는 것이 그들의 회사 생활인 것이다. 잘하면 회사에서 주목받기 쉽기 때문에 잘할 필요도 없고 조용히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 말이다.


 그러나 적당히 살아가는 삶도 나와는 맞지 않았다. 어느 정도 나의 만족감을 채워 줄 수 있는 그런 일들이 필요했다. 그 만족감을 회사에서만 찾으려고 했던 나는 참 바보였던 것 같다. 어떻게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그런 곳이 회사였는데, 그때 나는 왜 발버둥 치면서 만족감을 채우려고 했었을까. 채워지지도 아니 채울 수도 없는 그런 곳에서 말이다. 그렇게 불안장애 환자를 경험하고 나는 회사에서 잘해야 된다는 생각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을 돌려 나는 회사 밖에서 나의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저것 정말 많은 시도를 하게 되었다. 지금처럼 브런치 글도 쓰고, 블로그 운영도 하고 최근에는 유튜브도 시작했다. 무언가 작지만 소소한 만족감이라고나 할까? 내가 기대했던 만족감을 여기에서도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해소된 부분은 없지만 작은 만족감과 보람은 불안을 없애는데 충분한 효과를 갖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 일들이 모두 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그만큼만. 무언가를 해냈다는 만족감만 얻는다면 충분하다. 잘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김 빼는 소리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게 생각하지만 잘 생각해볼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잘하려고 노력하기 위해서는 인생의 시간이 너무 길다. 평생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면 정말 눈앞에 행복을 보지 못한 체 살아갈 확률이 크다.

 또한 잘해야 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묻고 싶다. 잘하지 않고 살아본 적이 있는가? 잘하지 않아도 잘하는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잘하지 않은 삶을 산 적이 없다면 무슨 일이든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옳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잘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비난하지 말아라. 잘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들의 삶의 방식이 있고 그들의 룰이 있는 것이 분명할 것이니까 말이다.


힘들고 지치고 죽고 싶을 만큼 불안에 떠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굳이 잘할 필요 없다고 말이다. 그냥 천천히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잘하지 않으면 어떤가? 당신이 행복하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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