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에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부터 조언을 구하는 사람까지. 그 외 미래에대한 막연한 불안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불안을 이겨낸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지만 정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고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다름 아닌 타 사업부의 부장님이 해준 이야기다. 그분과 나와의 인연은 신입사원 시절 업무를 같이 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때 그분은 과장이었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이었다. 그랬던 나를 아무런 대가 없이 잘 알려주고 도와주셨다. 또한 나를 동생처럼 대해주시기도 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는 공적인 관계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사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 준 그런 부장님이다. 그랬던 부장님은 뒤늦게 나의 퇴사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불렀다고 했다.지금 생각해보면 먼저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 죄송스럽고 한편으로는 너무 감사하다.
그렇게 시작된 그분의 이야기.
퇴사 이전나의 휴직 때문인지 그의 힘들었던 옛 시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20대 후반벤처(스타트업)를 시작으로 여러 회사를 거쳐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정말 열심히 살았던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와 같이 힘든 때도 있었다고 했다.
젊은 시절의 그는 퇴근 후 집에 가서 전공서적을 읽을 만큼 학구적이었다고 했다. 사람과 노는 것보다 전공서적을 읽는 것을 더 좋아했던 그는 사람과의 소통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그에게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지금 그의 모습을 보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술을 좋아하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사회성이 부족했던 그는 일은 일대로 책임은 책임대로 지면서 인정받지 못하고 손해만 보면서 회사생활을 했다고 한다. 회사에 이런 사람들 있지 않는가? 열심히 일하면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말이다(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누구 한 명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것 같고 그러다 보면 경제적으로 벌이가 없는 상황이 올 것이고 결국 가족의 생계와 직접적으로 이어질 것처럼 불안은 점점 더 확장해 나간다. 그렇게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불안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는 지금 불안들을 전부는 아니지만 극복했다고 말했다. 극복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바꾸면서부터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생각을 어떻게 바꾸었길래 극복할 수 있었단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머리를 망치로 뚜드려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껏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고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멀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그런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바로 트레이드오프(trade off)라는 이야기이다.
무엇 하나를 얻기 위해서 또 다른 무엇 하나를 내주어야 한다, 이처럼 세상에 당연한 이치가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다. 그러나 1인치의 뱃살은 내가 감내해야만 한다. 수석님 같은 경우에는 회사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야근이 많았고 주말출근도 하다 보니 가정생활을 내어주었다고 하셨다. 이런 사이클의 반복은 가정에 작은 불화를 만들어냈고, 퇴근 후에도 집에 가고 싶지 않았던 시절이 있다고 했다. 그랬던 그는 개발을 하는 도중, 스마트폰에 있는 모든 기능을 활성화시키려고 하면, 배터리를 많이 소모시킬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진리와 맞닥뜨렸다. 이날부터 수석님은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업무시간 내에 일을 끝내려고 노력했고 부서장들이 보기에는 괘씸한칼퇴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그는 회사에서 인정을 덜 받는 것을 선택하는 대신 자상한 아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법은 쉽다. 내가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고 적당히 힘든 티를 내어주면 이를 인정해주고 알아준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회사 일 자기 혼자 다하냐며 다른 동료들의 수군거림도 있었다. 남들에게 늘 좋은 사람이고 싶었던 나는, 이 상황이 싫고 또 힘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목표도 달성하고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은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가 내가 다치거나 둘 다 놓치는 모습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내가 추구하는 나의 모습이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느 순간 나는 이상을 쫓기 위해 지쳐가고 있었다. 둘 중 하나를 놓치는 일들이 종종 나오며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책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러한 악순환이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 같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단 한 가지다. 하나를 취하게 되면 하나를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라는 것이다. 회사에서 인정을 받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정에 소홀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좋은 일이 생겼다고 무조건 무엇을 내어줘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무엇을 내어 줄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다른 한쪽을 놓아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라는 얘기이다. '당신에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무엇을 취한다면 또 다른 무엇을 내어주는 것도 당연하다.'라고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삶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힘들다면 머지않아 당신에게 좋은 일이 찾아올 것이다. 반드시.
'트레이드오프'라는 이 말. 내 인생에 있어서 삶의 질을 높여 줄 그런 말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