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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트 Mar 20. 2023

미래에서 온 편지, 과거로 보내는 편지


대문 앞, 우편함을 살피는 것은 자취한 뒤로 생긴 습관이다. 혼자 사는 나의 생사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강도 같은 조세처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우편함 안에 있는 한 통의 편지봉투를 집어든다. 평소 받던 하얀 명세서 봉투와는 확연히 다른 색과 크기의 봉투였다. 집에 들어와 짐을 소파에 던져두고 편지 뒷면을 살펴보니 ‘받는 이’를 적은 글씨체가 낯익었다. 그건 바로 내 필체였기 때문이다. 그제야 작년 이맘때쯤 1년 우체통이라는 이벤트 같은 걸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나에게 쓴 편지라니. 낯 뜨겁기 짝이 없는 이런 짓을 왜 했을까. 기억력이 나쁜 내겐 정말 남이 보낸 편지처럼 느껴질 것이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봉투를 열어보니 빼곡히 적힌 글자들이 보인다. 역시나 나의 글씨체다. 과연 작년의 난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미래의 나에게,

이건 과거의 네가 보내는 메시지야. 난 내 삶을 두고 일종의 실험을 해보려고 한다. 난 요즘 지나치게 선명한 미래가 떠오르곤 해. 특정한 순간의 상황뿐 아니라 공기, 소리, 분위기, 감정까지. 그 순간을 떠올린 뒤로 난 이런 생각을 했어. ‘과거의 행동이 미래를 만드는 걸까? 반대로 결정된 미래가 과거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을까?’ 만일 내가 본 순간이 미래가 보낸 일종의 신호라면, 그 미래를 향해 달려 결국 현실이 되었을 때 그 결과에 대한 원인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설령 미래로부터 온 것이라도 인간은 그걸 알 수 없겠지.

서론은 이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미래의 나 B는 이 편지 마지막에 적힌 행위를 해야 한다.


그것은 지금의 나 A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행위는 나 A가 아닌 또 다른 사람 C가 결정한 뒤 적은 것이다. (즉, 당신은 알지만 지금의 나는 모른다.)


C는 기입을 마친 뒤 이 편지를 봉인하여 우체통에 넣는다.


당신 B이 이 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면 내가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어떤 변화를 겪었다는 것.



당신의 행동이 나의 1년을 변하게 할 수 있을까?


1년 후, 나는 에펠탑에서 찍은 기념사진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다. -C-


편지를 본 나는 헛웃음을 터뜨린다. 이때의 상황이 명확히 기억난다. 유튜브에서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을 접한 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에 대한 상상에 빠져있을 때였다. 이때는 잘 몰랐지만 이 실험은 빈틈이 있었다.


내가 지시를 성공했다고 가정하면, ‘현재의 행동으로 인해 나는 여행을 결심하고, 경비를 마련하고, 실제로 갔을 것’이다. 이것이 나 A의 실험 성공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실패했다면? ‘실패했다는 행위로 인해 나는 여행을 결심하지 않고 경비도 모으지 않고 여행도 떠나지 않게 만들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실패한 경우에도 같은 논리가 성립된다. 변하는 것은 없고 여전히 인과는 시간에 순행하는지 역행하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결정된 한 가지 현실 밖에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났고, 인과는 인과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상상만이 그대로 남아있을 뿐이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실행한다.

그리고 갤러리에서 한 사진을 스토리에 업로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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