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불완전함의 역습

by 미미유


세 친구는 거대한 벽 앞에 섰다. 벽돌은 반듯했지만 색깔은 들쭉날쭉했고 틈새마다 부러진 글자와 기호들이 박혀 있었다. 루니가 손끝으로 벽돌을 더듬었다.



“이 벽은… 도시와 이어진 흔적 같아. 여기, 표식이 있어. 우리가 모은 지도 조각과 겹쳐.”



세 친구는 지금까지 얻은 조각들을 하나로 맞췄다. 온전한 지도가 되지는 않았지만 뒤틀린 선들이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벽 한가운데. 마지막으로 코코가 손을 내밀자 오래된 봉인이 풀리듯 벽에 금이 갔다.


철컥—


벽이 열리자, 그 안엔 또 다른 지하 통로가 있었다.


1467557.jpg?type=w1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통로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벽면에는 빛바랜 초상화가 줄지어 걸려 있었는데, 표정은 모두 지워져 있었다. 눈은 비어 있고, 입은 일그러져 있었다. 그림 아래에는 이런 글귀들이 있었다.


- 실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 감정은 오류다.

- 완벽이 곧 생존이다.

루니가 속삭였다.


“이거... 아무래도 도시에서 지워진 사람들의 기록 같아. 실패와 감정을 없애 버리고, 여기다 버린 거야.”


두잇의 두 주먹이 떨렸다.


“그래서 아버지가… 늘 지하를 감시했던 거구나. 도시는 번듯해 보였지만, 사실은 여기에 다 가둬둔 거였어!”


통로 끝에는 거대한 탱크들이 있었다. 수조 안에는 반쯤 부서진 발명품들, 실패작 노트, 찢긴 그림, 울다 지친 사람들의 목소리가 떠다녔다. 가까이 다가가자 목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나는 부족했어.”



“조금만 더 잘했으면….”



“틀리면 안 돼. 틀리면—.”



그 목소리들이 금속 벽에 부딪히며 메아리쳤다. 코코가 얼굴을 찡그렸다.


“완벽주의 도시는 겉으로 완벽하게 유지되지만, 사실은 실패와 감정을 여기에 가둬두려고 한 것 같아. 불완전한 모든 것을 이 세계에 쌓아 올려 만든… 일종의 쓰레기장.”


루니의 가슴이 꽉 조여 왔다. 그녀가 늘 두려워하던 불안, 남 앞에서 보일까 감추던 눈물은 모두 ‘완벽주의 도시가 용납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모든 것이 이곳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두잇이 이를 악물었다.


“거짓말이야…
아버지는 늘 '완벽해야 한다'라고 말했어.
하지만 그 완벽은 이 희생 위에 세워진 거였어!"




갑자기 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안쪽 깊은 곳에서 낮고 위압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정은 방해다.
실패는 제거해야 한다.
완벽만이 길이다.


세 친구가 고개를 들었다. 수조 사이로 그림자처럼 거대한 형상이 서 있었다. 검은 망토를 두른 도시의 지배자 완벽주의씨였다.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군.”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너희는 불완전함을 받아들인다고? 그러나 불완전은 혼란과 파괴만 부른다. 도시가 존재하려면 불완전은 반드시 격리되어야 해.”


루니가 몸을 떨며 한 발 나섰다.


“아니, 불완전함은 우리를 망치지 않아요. 실패 속에서 배우고, 감정 속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요. 우린 불완전하기 때문에 성장할 수도 있어요!”


완벽주의씨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어리석은 것들. 불완전이 도시를 무너뜨릴 것이다.”


루니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속을 울렸다.



혼란이 있어야 성장도 있어요. 감정이 있어야… 우리가 사람이죠.




완벽주의씨가 더 단호하게 외쳤다.


“감정은 약점이다.”


“약점은 연결이에요!”


루니는 지지 않겠다는 듯 한 걸음 더 나섰다.




우린 서로를 통해 강해져요. 완벽은 고립이에요.

당신은 사람들을 완벽하게 만든 게 아니라
두렵게 만든 거예요.

그저 말 잘 듣는 사람이 필요했던 거라고요!





완벽주의씨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의 손끝에서 금속 조각이 피어올랐다. 조각들은 빛을 머금어 회오리처럼 회전했다.


“두려움이 없다면, 질서도 없다!”


그가 팔을 휘두르자 흔들리던 수조가 산산조각 깨져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억눌린 감정들이 물결처럼 쏟아져 나왔다. 울음, 분노, 부끄러움, 상실, 포기. 모든 감정이 살아 있는 듯 도시를 뒤덮었다. 두잇이 루니 앞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루니, 네 말이 맞아. 두려움은 힘이 될 수도 있어!”


그의 충동이 불꽃처럼 터졌다. 불안이 루니의 심장 박동을 더 세게 울렸고, 코코의 눈빛이 그 빛을 하나로 모았다.


“완벽주의씨 당신이 감정을 막을수록, 도시가 무너져요! 감정은 질서의 적이 아니라, 균형이에요. 이 균형을 지우는 순간 당신의 세계는 이미 끝났어요!”


완벽주의씨가 외쳤다.


“그럼, 네가 만든 세상은 대체 어떤 세상이지?”


루니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가슴속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러나 이번엔 불안에 밀리지 않았다. 불안을 손에 쥐고 조용히 말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이요.



루니의 말이 끝나는 순간, 바닥에 억눌렸던 감정이 하늘로 치솟았다. 붉은 분노, 푸른 슬픔, 금빛 희망, 은빛 눈물. 색들이 뒤섞이며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완벽주의씨가 비명을 질렀다.


“멈춰! 그건 균열이야!”


루니의 목소리가 빛 속에서 울렸다.


“맞아요. 하지만 균열은 깨짐이 아니라 숨이 트이는 순간이에요!


도시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지하의 불완전 세계가 위로 솟구치고, 하늘의 완벽주의 도시가 아래로 가라앉았다. 감정의 빛이 도시의 벽을 뚫고 하늘을 찢었다. 하늘은 깨진 유리처럼 부서지고, 거리의 건물들이 기울며 금속 조각이 되어 흩어져갔다.







keyword
이전 09화충동의 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