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새벽에 깨어 고요한 평화 속에
다 읽지 못했던 찰스 부카우스키의 책을 다시 펼친다.
“ 우린 병들었고, 우린 희망에 기생하는 빨판상어다.
우리 옷은 남루하고, 우리 차는 낡았다.
우린 신기루를 향해 나아가면서 너나없이 삶을 허비한다. ”
찰스 부카우스키의 말이 맞다.
우린 병들었고, 희망에 기생하는 빨판상어다.
미디어로 배달되는 불안과
쿠팡과 배민이 친절하게 배달하는 음식과 물건의 편리함으로
코로나 아닌 코로나 블루가 창궐하고 있음을 자각한다.
희망에 기생하는 사람들은 건강하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불안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에 빨판을 꽂지도 못하고
좀비처럼 휘청휘청 타자의 목덜미에 이빨을 꽂고 살점을 뜯어낸다.
어쩌면 죽기 직전의 안간힘이다.
내게 닥치지 않을 죽음을 두려워하며 좀비로 살 것인가?
죽음이 닥쳐올 날은 누구나 정해진 하늘의 이치라는 것을 자각하고 사람으로 살 것인가?
희망에 기생하는 빨판상어 같은 사람들이 활보하던 때가 그리워진다.
코로나는 지구 위에 인간의 기침소리를 일시에 소멸시켰다.
마치 감기처럼 코로나 바이러스 또한 우리의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이제 좀 더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인산 삶의 희망의 장을 만들어나가야 할 때다.
희망에 빨판을 박고 당차게 빨아 재끼는 건강한 펄떡거림의 생기가
사람 사는 세상에 다시 되돌려져야 할 때다.
나 또한 그런 희망에 빨판을 박고
새벽마다 상쾌한 차 한잔의 위안과 희망과 용기로 치유의 언어를 전달하고 싶었다.
내가 바로 희망에 기생하는 빨판상어가 되고자
새벽에 마시는 차 한잔의 힐링으로 새벽Tea톡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