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일기 20일

2020년 10월 14일 수요일. 불안,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

by 김은형

잠깐, 공황적 불안을 느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보도와 함께 마음이 바빠졌나 보다.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에 < 시네마 에듀! 영화로 배운다 >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공모에 성공하였으나, 코로나 때문에 실시여부가 명확하지 않고 프로그램 변경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일에 에너지가 빠져있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11일 예정이었던 행사를 25일로 늦추다보니, 예매하신 분들이 일정이 맞지 않아 다시 티켓을 나에게 28장이나 양도하시니 ... 관객을 다시 확보해야한다.


홍보물 다시 만들고, 부산에 사시는 지인들 중심으로 해서 카톡을 100여분께 드리고 나니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책 원고 수정을 들어가야 하는데, 왠지 시간을 잃어버린 느낌이랄까? 갑자기 약간의 공허감과 불안이 마음을 비집고 들어왔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몹쓸 감정이다.


이런 상황에 공연을 업으로 하시던 분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생각하니 내가 잠시 겪는 이 혼란쯤은 아무것도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주의 한 성악가는 코로나로 실내 공연장에서 공연을 할 수 없으니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 지붕위에서 가을 음악회를 했다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우리는 바이러스의 통제를 너무 당연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와 우울증 중 무엇이 더 인간을 해치는 나쁜 병증인지 비교해봐야한다... 도대체 코로나는 인류가 겪어온 병증 중 치사율이 얼마나 파워풀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지구촌 사람들의 삶을 온통 통제할 정도로 강력한 치사율인가? 아니면 코로나 보도로 인해 뿌려진 불안과 통제가 더 치명적인가?


인간에게 낙이 없어진다는 것은 죽음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낙이 없어진 나이에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것 또한 이치에 맞는 말이다. 삶에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지 않을 때 삶은 삶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잃는다. 우리가 생기를 갖고 사는 것은 어쩌면 종국에 죽음이 준비되어져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생기를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서는 생기가 사라진 죽음밖에 없다.



암튼 다행히 감사하게도 일단 16명이 신청을 해주셨다. 좋은 영화이고, 좋은 행사라서 초대하는 것이지만, 부탁하는 입장이 되니 마음이 못내 불편하다.


내 입장에선 좋은 것을 함께 나누겠다고 올려주고 뿌려주는 홍보이지만, 상대편의 입장은 내 필요가 있을 때만 연락한다는 생각이 들어 불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도 요즘 며칠 동안 지인 한 분과 절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일상적인 교류와 대화도 없으면서 자신의 주변사람들 사업 홍보 관련 부탁만 한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갈 이유가 없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된 관계이지만, 상대가 나를 대상화하고 비즈니스적으로 기계적인 관계를 이어간다면 그 관계는 이미 죽은 관계다.

한마디로 나는 단순히 홍보게시판의 역할만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절교라는 단어가 명확히 떠올랐다.


그런데 오늘 역지사지?로 내가 내 행사를 홍보하다보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물론 차이는 있지만 나 자신도 성찰 해봐야할 문제였다.


이젠 내가 이것이 좋다고 홍보하고 소문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시스템과 콘텐츠를 만들어 내야한다. 내가 아무리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 당신들을 이롭게 한다고 말해도, 상대는 그것을 곡해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내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진짜 다이너소어 처럼 큰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걷기 위해서는 일을 더 간결하고 단순화시켜야한다. 내가 다방면에 잡지적인 호기심과 재능이 있는 것도 팩트이지만, 나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시간의 량은 한계가 있음에 깨어있어야 한다.


해야할 일이 아니라 할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한다.

잠깐의 불안이었지만, 불안에 감사했다.

불안 덕분에 나 자신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나의 내면과 대화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감사하고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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