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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밀 Nov 05. 2019

멈춰서도 되는데?

쉬어가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멈춰서도 되는데?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뤄나가야 하는 일을 급하게 성취하고 싶었다. 하루라도 빨리 눈앞에 결과물을 두고 싶어 안달복달이었다. 그렇게 달린단 표현도 모자라 날아다닌단 표현이 적절한 시기를 만사 제쳐둔 지금, 정말 지쳤다. 한마디로 의욕상실. 한동안 너무 무리하게 살아서 벌 받는 걸까 싶을 정도로 무기력하다. 이런 자신이 죄스럽고, 화나고 한심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왜 이 중요한 타이밍에 멈춰 선 걸까.


여기서 멈춰 서면 지금껏 노력한 시간들이 한순간 물거품이 될까 봐 두렵다. 그러면 남들이 천천히 걸어서 쌓아 올린 만큼도, 지금껏 달린 내가 멈춰 섰단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 많이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 경쟁상대도 없으면서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 그만둬야 하는 걸 알면서도 쉽게 되지 않는다. 이 순간조차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다투는 내면의 내가 여럿 존재한다.


내가 장거리 마라톤에서 멈춰 선 걸 눈치챈 동료들이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 한다. “할 수 있어”, “지금껏 해온 게 아깝지 않아?”, “지금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나중에 편해.” 나름대로 위로랍시고 건네는 동기부여의 말인지 모르겠지만 화가 난다. 이제 그만 힘내고 싶고 그만 용기 내고 싶다. 지쳐 쓰러진 내게 필요한 건 파이팅이 아니라 괜찮아, 이 한마디였다.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듣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어려운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친구들은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준다. “이제 좀 쉬어도 돼.”, “이제껏 잘했어. 천천히 가자.” 이렇게 정말 듣고 싶었던 말들은, 실은 내면에 있던 말이다. 과거의 어느 순간 자신에게 한번 내뱉은 말. 알고 있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 다시 한번 말해주기를, 타인의 공감과 이해를 받기를, 타인의 인정을 받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난생처음 멈춰 서서 자존감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나로서는, 타인의 따뜻한 한마디가 절대적이기에. 그래야만 쓰러진 내가 먼지를 훌훌 털고 일어날 수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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