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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밀 Nov 04. 2019

좋아하는 사람에게 서운해질 때

보상심리

좋아하는 사람에게 서운해질 때


정성껏 쓴 편지에 대한 짤막한 답장을 읽었을 때


길고 짧음이 무슨 상관이랴 싶어 웃어넘기고 읽은 내용에 최소한의 성의도 없었을 때


진지하게 건넨 말에 생각보다 가볍게 답해올 때


보고 싶다, 만나자 말만 하고 약속은 잡지 않을 때


내가 더 많이 좋아하고 있음이 느껴질 때


혼자 발버둥 치며 노력해야 이어지는 관계임을 알았을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것저것 노력하고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은 보상심리가 작용해서다.


나는 널 이만큼 좋아해서 이만큼 해줬는데, 왜 넌 기대만큼 돌려주지 않는지, 혼자 서운해하고 속상해한다. 그런데 내가 노력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다. 그렇기에 내 노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받는 상대방의 입장은 어떨까? 유독 지치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시기, 누군가 내게 이만한 관심과 신경을 써주는 걸 보며 기운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답해줄 여력이 없거나, 잠시 미루는 중이거나, 이미 충분히 보답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혹은 이만한 관심을 받을 자격이 없다 생각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중일지도.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거나 별 감흥 없이 넘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에게 애정과 관심을 쏟은 후 보상심리가 들면 힘들어지는 건 자신이다. 당신이 속상해하고 서운해하는 동안 생채기 나는 건 오로지 본인의 심장뿐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것저것 퍼주는 성향이 강하다. 예를 들면 사랑, 관심, 애정, 선물, 정성껏 쓴 편지 같은 것. 최근에 푹 빠진 사람에게 이것저것 해줄 수 있는 건 모조리 다 해줬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보상심리가 작용했는지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한동안 혼자 끙끙 앓다, 어떻게 해야 서운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시작은 왜 서운한 감정이 들었는지 내면에 귀 기울이는 것이었다.


선물을 해줬는데 답례가 없어서 서운할 땐, 선물하는 걸 멈출지 아니면 답례에 대한 기대를 멈출지를 고민했다. 자신과의 긴긴 대화 끝에, 난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란 답을 내렸다. 상대가 작은 선물 하나조차 주지 않더라도, 고마워하는 리액션이 다소 작더라도 서운해하지 않기로 했다. 무언가 답례를 받기 위해 선물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아끼는 당신을 위해 선물을 고르는 시간이 즐거움이었고, 줄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것에 감사한 하루를 선물 받았으니까.


관심과 애정을 쏟았는데 비슷한 수준의 관심이 돌아오지 않아서 서운할 땐, 지금 이대로도 좋은지를 생각했다. 나는 100만큼의 관심과 애정을 주지만 상대는 60만큼의 노력밖에 보이지 않는 지금의 관계가 본인에게 상처인지, 아니면 이대로도 괜찮은지 긴긴 고민을 해보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상대도 나와 같이 본인이 더 노력하는 관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혼자 노력하는 관계가 상처라면, 아프지 않을 수준으로 관심과 애정을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100만큼의 노력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좋고 만족스럽다면 서운해하지 않기로 했다. 변하지 않아도 그대로 좋은 관계이니까, 그대로도 난 좋은 거니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서운해질 때마다 서운해하지 않기로 했다.


애정 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줄 땐(마음이든, 선물이든) 줄 수 있음에 기쁘고 감사한 것이지, 계산기 두드리며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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