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메밀 Nov 10. 2019

사랑에 관하여 - 상

너를 겪고서야 느낀 것들

사랑에 관하여 - 상


지겹던 전 연애가 끝나고 가장 좋은 건 마음 가는 대로, 어떤 사람이건 좋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로맨스를 기대하는 것. 3일에 한 번씩 호감 가는 사람이 바뀌는 것. 매주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것. 세상 그 누구도 좋아할 수 있고 만날 수 있다는 근자감. 연애를 하지 않아서 좋다는 건 이런 거겠지, 하고 생각했다. 한동안은(정말 일시적으로) 무척이나 기뻤다. 위에 나열한 것 따위를 실천하며 빛이 나는 솔로라 자부하기도 했고.


그렇게 살던 어느 날, 내 머릿속을 점거해버릴 한 사람이 등장한다. 드라마에서 톱스타가 갑작스레, 예고도 없이 카메오로 툭 하고 튀어나와 사람을 놀라게 하듯이. 잠깐이지만 내 일상에 큰 획을 긋는 그런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주로 잠들기 전에 떠올랐다. 보고 싶다던가, 안고 싶다던가,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웃는 그런 짓들을 하곤 했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더 큰 욕심이 일지도 않았고, 누군가 날 웃게 만드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에 감사하기만 했으니까.


그와 만날 일이 자주 생겼다. 우리는 대화가 꽤 통하는 모양이었고 난 그걸 우연의 일치라 믿었다. -여전히 그렇게 믿는다- 한여름에 우리는 정말 우연히 만나, 꽤나 통하는 대화를 나누며, 저녁시간과 웃음을 공유했다. 그럴수록 내 머릿속을 차지한 그의 영역이 확장되는 게 느껴졌다. 이제는 밤만이 아니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점심시간에, 유독 업무에 지쳤을 때, 술을 거하게 마셔 취한 날에, 하루의 모든 때에 그를 떠올리곤 했는데, 문제는 그 하루가 24시간마다 반복된다는 점이었다.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지경이 되어서야 내가 대체 왜 그를 생각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시작했다. 그 생각은 잠깐으로 종료되는 게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이어졌으므로 생각의 중간마다 그를 만나 데이트를 했다. 1차적으로는 그가 가진 마스크가, 책을 고르는 취향이, 중저음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날 반하게 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2차적으로는 그가 날 보며 웃는 미소가, 그의 말이 담고 있는 내용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생각의 깊이가 날 그에게 푹 빠지게 했을 거라고 추측했다.(이쯤에서 내가 그를 좋아하고 있음을 받아들였다) 3차적으로는 그냥 그가 좋아서.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사건의 발단을 되짚어보면 ‘이유’야 있겠지만 수많은 이유가 쌓인 후에는 사랑이라는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지는 게 아닐까, 하고 확신했다. 이미 합쳐져 버린 덩어리를 분리할 수 없듯이, 그가 자꾸만 생각나고 좋은 이유를 나열하는 일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제는 그가 좋은(좋았던) 이유를 찾으려고 하진 않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커진 마음을 보며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시작했다. 처음의, 내가 그를 왜 생각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를 사랑하는지,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일까에 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전 08화 혼자를 외치는 세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