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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밀 Nov 11. 2019

사랑에 관하여 - 하

사랑은 타이밍이야, 확실해

사랑에 관하여 - 하


한여름 동안 날 푹 빠지게 했던 사람이 있었다. 매일 밤 잠 못 들게 하고, 상사병에 입맛이 달아나 저절로 다이어트하게 했으며, 닿고 싶어 간절했던 사람.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는데, 나는 짝사랑을 짝사랑으로 끝냈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나, 원...


그때는 사랑이라고 확신했건만, 끝나고 보니 왜 이렇게 보잘것없어 보이는 걸까. 자기 위안일지 모르겠으나 그 사람은 정말 내 타입이 아니었다. 티키타카가 잘 맞는 걸 떠나서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바라던 연애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사랑했다고 착각’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사랑했다’는 말이 맞다.


망각은 축복이라고 했나? 나는 잊는 걸 참 긍정적으로 여기는 사람인데, 이렇게나 사랑을 빨리 망각할 줄은 몰랐다.(더 이상 긍정적이기 싫어졌다) 매일 밤마다 떠오르는 사람을, 만지고 싶고 닿고 싶은 사람을, 가끔씩 눈물 흘리게 했던 사람을 사랑이 아니었다고 하기엔 매몰차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사랑은 저런 게 아니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겐 사랑이었다. 확실하게.


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나 정의가 다르다는 걸 인정한다. 내겐 위에 나열한 것처럼 자기 전에 생각나고, 만지고 싶고, 좋은 쪽으로 마음을 괴롭히는 사람이 사랑이다. 이제와 사랑이 아니라 착각하는 건, 전부 시간이라는 놈 때문이다.(책임 전가가 아니라 정말이다) 사랑했던 시간 속의 감정에 언제까지고 머무를 순 없는 법이니까. 내가 원치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망각을 가져다준다. 사랑했던 감정은 그렇게 희미해진다. 나는 짝사랑에 오랫동안 아파했고, 후회 없을 감정의 표출을 했기에(내 생각에) 희미해진 지금의 내가 만족스럽다.


새로운 짝사랑은 입맛이 돋아나게 해서 괴롭다. 조금 더 샤프한 턱선을 보여주고 싶은데, 내 속도 모르는 지방은 자꾸만 달라붙는다. 한 달 사이 체지방률이 3%나 올랐다.


짝사랑 2회 차가 되어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좋아하는 사람의 좋아하는 사람 이야길 들어준달까. 한 번씩은 그런 상황을 즐기는 자신이 대단하기도, 미련하기도 하다. 두 달 정도 혼자 사랑을 품다 보니 가끔 사랑이 식을 때도 있다. 아, 어차피 우린 안될 거야, 저 사람은 날 싫어하지.라는 근거 없는 부정적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찰 때가 그렇다. 아무튼 그런 부정들은 금세 사라져서 날 다시 앓게 만든다. 첫회차보단 여유 있는 앓음을.


사랑이 타이밍이란 걸 깨닫게 된 건, 짝사랑 첫회차의 그가 날 좋아한단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서너 달을 꿈꿔온 시간인데 어찌 그리 메마른 흑백 화면처럼 느껴졌을까. 이미 지나가버린 사랑에 미련은 없었다. 얼굴을 대면해서 굳은 표정을 숨길수가 없어 아쉬웠을 뿐이다. 차라리 ‘카X’으로 말하지 싶기도 하고. 우린 좋은 친구사이로 남기로 했고 진짜 친구처럼 지내는 중이다. 믿기지 않네.


이게 사랑이 맞을까 고민했던 시기가 깨닫게 한 건 분명 있다. 첫 짝사랑으로 앓던 고통스러운 시기가 가져다준 결실(?)도 있다. 나는 앞으로도 여유 있는 짝사랑을 할 것이고, 사랑이 뭘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겠지만. 지금의 내게 사랑이란,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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