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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年 7月 16日, 정 때문에

오래된 메모

by memo


네가 서울로 전학가기 전까지는 매일같이 만났잖아. 불쑥 집 근처 공원으로도 왔었고,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은 철저하게 서로를 위해 남겨 두었던 것 같아. 앞으로도 간간이 전화나 메일, 메신저로 이야기는 나눌 수 있겠지만 그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져 갈 걸 알았어. 확신에 가까운 직감은 매순간 식탁에서, 거실에서, 잠드는 순간까지 전부 엄마가 알려준 것들이야. 가지 마. 그 말을 고작 열 살 때부터 속으로만 외쳤던 애로 자라게 된 거야. 조기 교육으로 ‘자존심론’을 택한 엄마거든. 내가 가진 ‘ㅈ’ 에 자존심 밖에 안 남은 이유기도 하지.




엄마는 네 이름을 지우고 서울 간다는 애, 서울 애.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어. 꼬리가 길게 태어난 나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었던 눈치야. 아직 아니라고 말해도 ‘서울’이라는 단어를 어떻게든 비집고 우겨넣었어. 서울 가면 넌 생각도 안 날 걸. 서울 가기 전까지만 잘 지내라. 그렇게 너로부터 휘적휘적 나올 수 있게 한 거야. 내가 그렇게 쉽게 나올 리가 없는데 어느새 멀리 밀려 나 있었어. 엄마의 성공적인 작전에 의해 우리의 날들은 바래 질 틈도 없이 깨끗하게 마무리 지어진 거지.



1997年 7月 16日, 맑음



그래도 잊지 않았지. 우리의 '거기'. 매일 만나던 그 곳 말이야. 네가 언젠가 여수에 오면 거기서 만나자고 할 거야. 정말 네가 올지 확인 해보고 싶거든. 여수의 그런 작은 원쯤은 네가 있는 지하철 노선도에 알알이 박힌 점밖에 더 돼. 강남, 신림, 압구정, 명동, 합정. 이미 그런 원들에 더 익숙해졌겠지. 잊어버렸다고 해도 별 수 없지만 우리의 거기에서 만나자고 하면 ‘지금 갈게.’ 그 말이 듣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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