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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는 글

by 이건해



궁상스럽다는 표현을 흔히 하는데, 그게 대체 무슨 뜻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궁상은 한자로 다할 궁窮에 형상 상狀을 쓴다. 즉, 궁상은 가진 게 다 떨어진 상태라는 뜻이고, 궁상스럽다는 말은 그런 꼬락서니로 보인다는 뜻이다. 요즘 말로는 ‘없어보인다’가 정확한 대체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런 말은 언제 들을까? 내가 최근에 보고 충격받은 예로는 이런 게 있었다.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신은 구두가 닳아서 수선을 맡길 곳과 비용을 묻는 글을 커뮤니티에 올렸더니 ‘궁상 떤다’는 덧글이 달린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게 구두방 따위를 알려줬는데, 유독 한 사람만은 뭐가 그렇게 답답하고 화가 났는지 요즘 구두가 해봤자 얼마나 한다고 고쳐서까지 신으려 하냐고 질문자를 매도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대단치 않은 비용으로 교체할 수 있는 물건을 굳이 고치느라 고생을 하면 궁상 떤다는 소리를 듣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무례해서가 아니다. 정말 틀린 말이기 때문이다. 오래 신은 신발을 고쳐서 다시 신는 일은 ‘없어보이는’ 행위가 아니라 자랑할 만한 일이다. 물건을 잘 관리해서 오래 사용하는 일은 사소한 물건에도 애정을 가질 수 있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산업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해서 뭐든 새것을 사서 쓰고 헌것을 버리는 일이 당연했던 시기와 달리, 무엇을 써도 탄소가 배출되고 환경이 오염되며 자원이 고갈됨을 인식하고 사는 이 시대에 추구해 마땅한 덕목이다.


다만 새 물건 사는 일을 비난 받아 마땅한 파괴적 행위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애써 모은 돈으로 무엇을 사서 쓰는 일은 분명 즐겁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주요한 기쁨이다. 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 건강한 정신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지탱할 즐거움을 여럿 확보할 필요가 있으니까.


그러면 어쩌잔 말인가? 답은 이렇다. 나는 물건을 새로 사는 즐거움도 어느 정도 유지하되, 물건을 잘 관리해서 쓰는 행위도 인생의 주요한 즐거움으로 여기자고 말하고 싶다.


말로만 적당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실제로 나는 요 몇달에 걸쳐 낡고 닳은 신발을 수선하는 일을 취미로 삼아서 다른 오락을 제쳐두고 밤마다 즐겼다. 족저근막염에 걸린 탓에 발에 잘 맞고 편안한 신발을 찾거나, 그렇지 않은 신발을 조정해야 했다는 절실한 이유가 있긴 했지만, 그런 이유를 제쳐두더라도 수명이 다 끝난 것처럼 보이는 신발을 되살리고 자기 역할을 다시 하게끔 새로운 시간을 부여하는 작업은 각별히 즐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손볼 때마다 신발은 자신의 빛과 기능을 되찾고 내 발은 편해지니 이보다 더 효능감이 느껴질 수가 없었다. 요즘 하는 일 대다수가 어떻게 애를 쓰든 이미 정해진 큰 흐름에 따라 아무렇게나 흘러가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짓을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바로바로 기쁜 작업이 또 있을까 싶다.


(신발은 신경 쓴 만큼 정직한 보상을 준다)



신발 수선을 두고 궁상이라고 덧글을 단 이는 아마 이런 즐거움에 대해 고려하지 못하고 비용 문제만 따져봤을 것이다. 비용으로는 당연히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혀 나오는 신발을 사는 게 합리적이니 이해할 수도 있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 역시 자신이 오래도록 사용해서 애정을 가진 물건을 버리는 일에는 망설임을 느끼고 그동안 ‘궁상’이라 생각한 일을 고려하리라 생각한다.


요컨대 궁상이란 근본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 가치관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무엇에 가치를 두는가에 따라 아끼는 생활은 기쁨이 되기도 하고 슬픔이 되기도 한다. 이어질 글의 모음은 이런 가치관 조정을 수시로 하는 사람의경험과 생각, 혹은 요령들이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중고 거래 경험이나 신발 등 잡다한 물건을 고친 방법, 돈 쓰기가 아까워 고민한 이야기 등이다.

물론, 세상 만사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 이야기 중에 어둡고 우울하며 피곤하고 속터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궁극적으로는 더 큰 즐거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누가 이것을 죄다 그럴싸한 포장이나 위선이라 할지라도 괜찮다. 내가 믿는 것이 나를 만들기 때문이다. 아끼는 일의 기쁨은 줄곧 키워갈 수 있다. 그게 바쁜 와중에도 마음 써서 해볼 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는 말의 단순한 동어반복이, 이 글을 읽는 몇몇 분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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