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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Sep 26. 2024

아차산과 용마산이 너를 부른다 해도



관악산 옆 둘레길을 다녀와 코스에서도 등산화에서도 불충분함을 느낀 나는 기회를 엿보다 할인 중인 새 등산화를 샀다. 제법 클래식한 모습의 누벅 가죽 등산화로, 밑창이 비브람 메가그립이라는 게 아주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등산화용 고무 밑창을 처음으로 만든 이후 지금도 신발 밑창으로 독보적인  비브람사는 무수히 많은 밑창을 만들고 있는데, 기존 밑창들이 대개 유럽 지형에 맞춰져 한국의 화강암 돌산에선 미끄럽다는 평이 있었던 반면, 근래에 새로 등장한 메가그립은 접지력을 높이면서도 충분히 튼튼하기로 정평이 낫다. 심지어 국내사의 등산화 밑창이 겨울에 다소 취약하다는 단점이 자주 지적되는 데에 비해 메가그립은 온도에 따른 접지력 변화가 적다고도 한다.


여담으로,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국내사 밑창에 애용되는 부틸 고무가 영하에는 경화되어 그렇다고들 하는데, 부틸 고무의 상용 최저 온도는 섭씨 -40도이며, 이 수치는 다른 고무에 비해 대단히 양호하다. 그렇다면 다른 첨가물이 문제가 되었거나 밑창의 모양 등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은데, 등산화의 실제 사용 환경은 사용자의 체중, 걸음걸이, 노면 상태 등 다양한 요소가 관여하므로 명백히 알 수는 없을 듯하다. 당장 나도 등산화를 냉동해서 잡다한 실험을 해봤지만 또렷한 경향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런 문제는 전문적인 시험 기관이 답을 내주면 좋으련만,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도통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튼 부틸 고무 문제가 사실이든 아니든 조심하고 대비해서 나쁠 이유는 없으니 그 등산화를 샀다. 새 신발을 사는 게 얼마만인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이었는데, 받아보니 썩 마음에 들어서 곧장 다음 일정을 잡았다.


고민 끝에 가기로 한 곳은 아차산이었다. 검색해보니 오르막이 제법 이어지긴 했지만 과격하진 않은 수준이었다. 발을 괴롭히는 너덜길은 없고, 느긋하게 구경할 유적지가 있었다. 인근 주민이 운동으로도 나들이로도 갈 만한 산이다. 게다가 바로 옆 용마산으로 소박한 연계 산행을 할 수도 있었고, 내려오며 폭포 공원도 볼 수 있을 듯했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체형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운동을 잘 하는 연예인도 용마산까지 성공적으로 올랐다. 물론 그 과정에서 투덜대며 욕을 좀 하긴 했지만, 우리는 더 젊고 팔팔하니 수월하게 용마산을 정복할 수 있으리라 예상할 만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늦은 오전에 산 옆구리에서 만나 등산 같은 트래킹을 시작했다. 다만 여섯이나 모인 탓에 시작부터 삐걱대는 문제를 겪었다. 제각각 다른 시각에 도착한 데다가, 심지어 늦게 온 사람이 먼저 와서 김밥을 사러 간다는 사람을 찾아가면서 집합 시각과 장소 모두 이리저리 바뀐 것이다. 나 원 참. 누가 대단한 손해를 본 건 아니지만, 언제든 다중 통신이 가능한 시대의 폐해라고 할 만하다.


아무튼 출발하고 나니 코스는 무난하고 좋았다. 길이 넓게 트여 밝고 시원했으며 오르막도 적당했다. 10월 말인데도 날이 더워서, 당근에서 구한 컬럼비아 등산 바지가 과도하게 따뜻했다. 착용감은 좋았지만 기온에 적절한 바지를 고르는 데에 실패한 것이다. 나를 보고 다들 어째서 그렇게까지 본격적인 등산 복장이냐고 놀랐는데, 확실히 과한 감이 있었다. 아웃도어 활동에 청바지를 입는 어리석은 짓을 그만하려고 새 바지를 입은 것이었으나, 반바지가 차라리 나을 판이었다. 이후에 산을 좀 더 다니며 시험해본 결과, 이 컬럼비아 바지는 영하 5도에서도 춥지 않을 만큼 보온성이 훌륭했다. 아차산보다 조금이라도 더 힘든 산이었다면 더워서 어쩔줄 몰랐을 것이다. 산을 오르는 행위는 생각보다 심하게 몸을 덥히며, 하반신은 추위에 퍽 둔감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로 했다.


날이 더운 만큼 기대했던 낙엽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즐기기에 나쁠 건 없었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부터 야유회에 가까운 등산을 즐기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편안하게 걸었다. 예쁘게 깔린 데크길이 나는 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불평할 수도 없는 것이, 데크길 아래는 대체로 경사진 바위였다. 데크가 없었다면 바위 주변을 돌아서 완만하게 올라가는 산책길은 성립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아차산은 접근성 좋은 나들이 공간이 되지 못했으리라. 그 와중에 저길 어떻게 갔나 싶은 바위 위에서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먹으며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이 제법 보여서 고수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느낌을 줬다. 마치 평생 여기서 살아온 사람들 같았다. 그에 비해 오래도록 도시에서만 지낸 샌님들인 우리는 얌전히 정상 부근까지 올라서 요기를 하기로 했다.


데크길 중간의 큰 갈림길에서 경사가 심한 길과 쉽게 돌아가는 길 중 쉬운 쪽을 택하고 걸었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서 데크길이 끝나고 경사가 심해지는 구간이 나왔다. 일행은 대체로 당황한 반면에 나는 내심 즐거워졌다. 경사의 태반이 무지막지한 바윗길이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바위가 여기저기 널린 길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암반으로 되어 있는 듯한 바위 언덕, 암릉 능선길이었다. 나는 새 등산화의 빼어난 접지력을 체감하며 신나게 오르막을 걸었다.


(도시 바로 옆의 바위 지대는 생소한 풍경의 경탄을 선사한다)


그런데 암릉을 걷는 게 왜 즐거운 걸까? 자신이 암릉 애호가임을 깨달은 지금 생각해보면 암릉의 매력은 비일상성과 적당한 위험, 그리고 장비와 기술의 한계를 시험하는 재미에 있는 것 같다. 일단 암릉은 일상 환경에서 마주칠 일이 없으니 드문 경험이다. 그리고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면 다칠 위험이 직관적으로 눈에 보이고, 실제로 미끄러운 부분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써서 디뎌야 할 곳을 잘 찾아 디디고 손으로 짚어가며, 바로 그 순간을 위해 물색한 등산화가 미끄러지지 않을 한계를 가늠하고 힘과 체중을 조절해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요컨대 암릉 등산은 머리와 몸과 장비 모두를 쓰며 움직이는 활동인 셈이다. 여기에 맛을 들이면 평범한 흙길은 시시해서 걷기가 싫어질 지경인데...... 생각해보면 이렇게까지 말하는 사람이 평탄한 숲길과 데크길을 걷는 활동에 만족을 느낄 턱이 없었다. ‘등산’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리기에는 등산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걸 더 일찍 알았으면 실망도 덜했을 텐데.


아차산의 암릉 구간은 비교적 무난하고 좋은 길이었다. 난간이나 로프를 잡아야만 할 정도로 가파르거나 대체 어딜 밟고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험하지 않아서 누구나 쉬엄쉬엄 갈 만한, 좀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경사로라고 할 만했다. 이 정도라면 암릉 애호가부터 보통의 산책자까지 모두 만족할 만한 길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완전히 내 착각이었다. 암릉 구간 중간에서 일행 한 명이 뒤처지더니 결국 포기하고 하산해버린 것이다. 심지어 관악산에 갔을 때처럼 어디서 기다리면 금방 오겠다는 식의 논의를 거친 것도 아니고, 각자의 속도에 따라 흩어진 상태에서 정신차려 보니 그렇게 된 식의 하차였다. 결국 이번에도 참가자 전원의 체력에 맞는 코스를 고르는 데에 실패한 셈이다. 게다가 어느 정도 속도를 맞춰 움직이지도 못해서 산행이 상당 부분 아무렇게나 흘러가고 말았다. 모두가 발맞춰 움직일 것까진 없지만, 간격이 벌어져 앞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뒤쳐지면 기분이 영 좋지 않다는 걸 나는 나중에 직접 깨닫게 되었다.


암릉 구간이 끝나자 제법 잘 다져진 흙길이 정상으로 이어졌고, 중간중간 고구려 유적이라는 성곽의 일종인 보루들이 나왔다. 그 즈음에서 겨우 모인 일행들은 유적을 구경하고 멀리 보이는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며 다시 산책하듯 걸었다. 만만치 않은 바윗길을 지나서 오른 곳에 공원처럼 평탄하고 안온한 길이 펼쳐졌다는 게 놀라웠다. 뒷산 같다가 암릉이었다가 다시 공원 같다니, 마치 서울 근교 산의 체험판 또는 샘플러 같은 산이다. 등산이 뭔지도 모르고 산을 가자고 했던 저번에 관악산이 아니라 여길 왔어야 했다. 역시 코스는 잘 알아볼 일이다.


아차산의 정상은 공원 같은 평탄한 중간이고, 정상석이 아니라 검은색 금속 패널이 서있어 어째 완등을 했다기보다는 명승 고적에 온 기분이었다. 지자체에서도 여길 본격적인 산처럼 꾸미기에는 좀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차산 입구의 표지석에 예산을 과도하게 썼거나...... 아무튼 사진을 찍을 때는 약간 실망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건 그것대로 특색으로 받아들일만 한 것 같기도 하다. 모든 산의 정상석이 돌인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출발할 때는 바로 옆의 용마산까지 갈 생각을 했는데, 일행 모두 밥을 먹으러 가고 싶어해서 용마산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기까지 온 마당에 조금만 더 가면 오를 수 있는 산을 놔두고 돌아간다는 게 대단히 아쉬워 발이 떨어지지 않을 지경이었고, 불합리한 짓을 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백 원만 더 쓰면 만 원짜리 사은품을 받을 수 있는데 관두고 돌아서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굳이 억지로 산을 오르자고 해서 좋은 추억이 될 턱이 없는 데다가 하차해서 기다리는 사람을 내버려두고 산 하나를 더 오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혼자 갔다 오겠다고 훌쩍 떠날 만큼 사교 활동의 가치를 낮게 여기는 것도 아니라 순순히 김밥을 나눠먹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산은 원점 회귀를 목표로 하긴 했으나, 쉬운 길로 온 만큼 갈 때는 어려운 길을 거치기로 했다. 고구려정이라는 유명한 정자가 있어서 들렀다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즈음에서 관악산 정상을 함께 올랐던 ㄱ을 제외한 모두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ㄱ과 나만 정자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 나머지는 다시 쉬운 길로 빠져 하산했다. 정자가 볼품없든 화려하든 구경은 하고 가는 게 당연한 행동 양식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 편견을 수정해야 했다. 지치고 배고프면 천하의 비경도 무의미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이 여럿 모여 활동하려면 각자 신체 조건도 사고 방식도 다르다는 점부터 인식해야 한다는 교훈이 이번 산행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고구려정에서 내려가는 험로는 이 정도의 낮은 산에서는 보기 힘든 진풍경이었다. 일대가 모조리 하나의 암반 지대라 흙이 거의 안 보인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울퉁불퉁하게 넓게 펼쳐진 바위 지대는 마치 용암이 흐르다 그대로 굳어버린 듯해서 상당히 이국적이었다. 반지의 제왕에서 오크와 인간들이 싸우는 배경으로 나타나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덕분에 눈도 즐겁고 걷기도 재미있었다. 용마산을 포기한 아쉬움은 거기서 달래고 내려갈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연락도 없이 데크길에서 정확히 합류하여 하산을 마친 우리는 인근의 음식점에서 닭한마리를 먹고 카페에서 놀다 해산했다. 그 정도면 적당히 보람있는 일정이었다. 적당히 건강해서 오르막을 한 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걸을 수 있는 등산 초보들과 비교적 짧게 등산의 맛을 느끼고 싶으면 아차산을 알아보라고 권할 수도 있게 되었다. 다만 기대와 다르게 발바닥 통증이 솔솔 밀려와서 새로 산 등산화가 충격을 충분히 방어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퍽 예뻐서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은 등산화였는데, 결국 이 날 하루 신고 방출하게 되었다. 어느 분야든 비슷하겠지만, 등산은 정말 경험이 적고 충분히 단련되지 않았다면 정보를 더 알아보고 더 좋은 장비를 써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또다시 새 등산화와 새 코스를 찾아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새 코스는 당연히 찾아야하는 것이긴 했지만, 이제는 지금까지와 다른 관점, 다른 기준을 가져야 했다. 나는 이제 ‘모두가 다같이 즐거운 등산’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교훈

-여럿이 간다면 등산 참가자들에게 코스 난이도를 숙지시켜야 한다.

-참가자들의 체력이 크게 다르다면 산 중간까지 가거나 안 가는 조를 짜두는 것도 방법이다.

-아차산은 낮지만 제법 여러가지 재미가 섞여 있다.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장비에 너무 돈을 아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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