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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의 단풍부터 황혼까지 3

-의상대에서 공주봉을 지나 황혼으로

by 이건해



나는 곧장 크게 데크를 깔아 멋지게 조성한 의상대 한쪽을 돌아보았다. 거기엔 인도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 대여섯 명이 간단한 촬영장비를 동원하여 서로를 찍으며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다. 아무리 요즘 유튜브 촬영하는 사람이 많다지만 이런 건 또 새로운 광경이었다. 한국 문화가 널리 퍼진 끝에 저 머나먼 천축 사람들이 한국 산까지 찾아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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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상대 오르는 길에 펼쳐진 이불같은 산들)


아무튼 인도 음악을 들으며 둘러본 주변 경관은 여기까지 올라와서 볼 가치가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곳 대부분이 산인 광경 자체는 자주 보았지만, 구겨진 이불처럼 넓게 펼쳐진 산의 물결이 모조리 붉게 물든 이곳의 광경은 각별했다. 번듯한 표지석과 태극기 옆에 서서 서쪽을 보니 산으로 이루어진 바다의 수평선으로 태양이 접근하고 있었다. 길고 괴로운 데크길에 평소보다 훨씬 지쳤던 나는 비로소 몸과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등산은 어딜 가도 늘 재미있고 고통의 과정도 멋진 것이라는 주장을 수정하려던 나는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시밭길을 지난다 해도 결국엔 의미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소요산의 단풍부터 황혼까지 3-2.jpg

(2.멀리서 잠겨드는 태양을 보는 마음이 경건해진다.)



4시 40분나 되어 허겁지겁 서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려면 아직 시간이 있었지만 산에선 양지라고 할만한 곳이 거의 다 사라져 밤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었다. 나는 구절터 방면으로 꺾어 빠르게 내려가면 아주 어두워지기 전엔 하산할 수 있겠지 생각하며 걸었다. 길은 험하지 않았지만 좁았고, 그것도 모자라서 가끔 능선 옆 샛길 같은 곳으로 통해서 이 길이 맞는 걸까 엄청난 의심을 자아냈다.


그러다 마침내 하산로로 접어들 수 있는 갈림길이 나왔다. 다행히도 끔찍하게 촉박하지는 않은 시간에 하산할 수 있을 듯했는데...... 팻말을 보자 엄청난 고민이 시작되었다. 소요산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라는 공주봉이 고작 500미터 거리였기 때문이다. 500미터라니, 러닝용 트랙 한 바퀴 정도의 거리다. 이걸 깨끗이 포기하고 빨리 하산할까 아니면 올라가볼까.......


북한산 숨은벽을 거쳐 정상 바로 밑까지 갔을 때, 나는 해가 지는 게 걱정되어 코앞에 있는 정상석을 포기하고 곧장 하산한 바 있다. 해가 진 뒤의 하산은 상당한 위험을 동반하므로 이런 경우라면 누구에게나 빠르게 포기하라고 권할 것이다. 하지만 이때 나는 이 머나먼 소요산에 다시 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야간 산행 경험이 제법 쌓인데다, 소요산의 산세는 감당할 만하다는 판단하에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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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일본어번역가.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수상. 브런치 출판프로젝트 특별상 수상. 2024년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공모전 단편 우수상 수상. 협업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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