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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이 귀하다는 걸 모르고 있었지

-기회가 녹기 전에 맛있게 먹어둬야해

by 이건해


이 글을 쓰는 9월 말은 더위가 물러가서 찬 음식따위 그다지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시기지만, 아이스크림은 분명 겨울에도 맛있다. 한겨울에 고깃집에서 고기를 배불리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퍼먹을 수 있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아이스크림을 한 컵 퍼먹을 것이다. 그게 아무리 흔해빠진 삼색 아이스크림이라 할지라도 아이스크림은 기회가 있다면 먹어야 마땅하다. 과거의 행복이 돌아오지 않듯 떠나간 아이스크림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니 그것이 오늘을 사는 존재로서의 합리적 선택일 것이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언제부터 좋아했는가는 따질 수 없으나, 초등학교 때 종종 먹으며 즐거움이 각인된 것만은 확실하다. 그때는 찰떡 아이스크림을 심부름으로 사와서 가족끼리 나눠먹곤 했다. 드물게도 갯수가 정확히 나뉜 제품이라 여럿이서 그보다 공평히 나눠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이 없었다. 쫄깃한 떡을 베어물면 안에서 달고 시원하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이 나와 입안에 퍼지는 그 맛은 여전히 빼어나다. 갯수가 줄어든 게 아쉬울 따름이다.


나눠먹기에는 좋지만 공평하게 먹기는 힘든 아이스크림의 대명사인 쌍쌍바도 친구와 나눠 먹을 때가 제법 많았다. 이건 엄청난 별미라곤 할 수 없는 보통의 초코맛이지만, 하나의 아이스크림에 막대가 둘 꽂혀 나와서 갈라먹을 수 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혁신적이었다. 회사 입장에서 단순하게 따져보면 두 명이 하나씩 사먹는 게 나을 텐데, 주머니 사정이 신통치 않은 학생들이 갈라먹기 좋게 만들었다는 점이 매력적일뿐더러 자비마저 느껴진다.


대충 갈라도 중간은 가도록 나온 아이스크림으로 더위사냥도 있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이 녀석은 종이팩 가운데를 갈라서 반으로 부러뜨리게 되어 있는지라 애초에 혼자 먹어도 두 개를 들고 먹게 된다. 하나를 다 먹고 나머지를 먹기 시작하면 좀 득 본 기분도 든다. 간혹 재주좋게 부러뜨리지 않고 위쪽 팩을 깨끗이 뽑아내서 하나로 먹는 애들도 있었는데, 나는 이렇게 먹으면 상단부가 녹아 흐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한 번 해본 뒤로 그만두었다. 아무튼 달콤하고 시원한 더위사냥의 커피맛은 지금도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


사서 즉석에서 나눠먹는 아이스크림 말고 이따금 집에 사놓고 조금씩 먹는 아이스크림도 있었다. 우리집에선 엑설런트와 티코를 그렇게 두고두고 먹을 때가 가뭄에 콩나는 빈도로 있었는데, 맛은 티코가 더 좋았으나 기억에 남기론 엑설런트가 더 강하게 남았다. 비싼 초콜릿처럼 빛나는 포장지로 개별포장되어 대단히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걸 하나씩 하나씩 벗겨먹는 작업은 영 귀찮을뿐더러 손에 올리고 먹자면 빠르게 녹아내려 성가시기도 했지만 그래도 먹는 기분이 제법 호사스러웠다. 아마 그 기분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겐다즈와 엑설런트 둘 중 무엇이 더 귀한 것 먹는 느낌을 주나 비교하라면 나는 망설임없이 엑설런트를 고르리라. 이것이 CM송과 브랜딩의 힘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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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일본어번역가.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수상. 브런치 출판프로젝트 특별상 수상. 2024년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공모전 단편 우수상 수상. 협업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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