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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 죽이기 05

by 이건해

#5


예선은 양 팀장이 자신에게 어떤 관심도 갖지 못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오래도록 고민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추악한 꼬락서니로 근무하거나 한심한 언행을 일삼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으나 이후의 삶을 생각해야 했고, 먼저 나서서 관심을 끊어달라고 하자니 상대가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 혼자 이상한 사람이 되는 데다가, 여차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복수를 당할 것 같아 두려웠다. 대학때 교제 신청 거절이 건방지고 싸가지 없으면서 은근히 여기저기 꼬리치고 다니는 년이라는 소문으로 이어졌던 걸 생각하면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번은 퇴사를 할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좋게 해결될 가망이 보이지 않는 지경에 빠져든 채로 가만히 상황의 악화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한시 바삐 도망치는 편이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끓는 솥 안의 개구리 꼴이 될 수는 없다. 물론 구설수에 오른다고 죽지야 않는다는 건 알지만, 그 꼴을 견디느니 죽는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대학 시절과 달리 이번 상대는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급자다. 여차하면 삶이 진창으로 빠져들어 견딜 수 없이 피곤해지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예선의 마음은 크게 기울었다. 그러나 막상 구직에 다시 발을 들이자니 다른 방향에서 압도적인 불안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분야마다 인공지능이 대거 도입되면서 가뜩이나 구직이 어려워진 요즘 세상에 멀쩡한 대기업을 그만둔다는 것은 재정적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아닐까?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빠져나가는 생활비와 부모님께 보낼 돈을 생각하면 누가 죽이겠다고 협박한대도 이 자리에 붙어있어야 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던 예선은 인터넷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상담 전문 인공지능에 질문해 봤다. 그 인공지능은 대체로 뻔하고 좋은 말만 하기로 정평이 난 모델이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니니 상황을 지켜보고, 불이익이 걱정된다면 꾸준히 증거를 수집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선은 잠시 스마트폰을 집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누가 그런 뻔한 얘기나 들으려고 상담을 시도했겠는가? 이따위 뻔한 언어 조합 모델에 삶을 위협받는 사람이 많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예선은 이번에는 익명 커뮤니티에 간단한 요점만을 정리해서 어쩌면 좋을지를 물어봤다. 그러나 30분쯤 뒤에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상황에선 어쩔 방법이 없다는 답변, 그리고 인기 많다고 은근히 자랑하는 거 아니냐는 답변이 전부였다.

예선은 학교에서 수군대던 사람들이 떠올라 황급히 커뮤니티 창을 닫고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믿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스스로 생각해야 했다.

돌아올지도 모를 옛 고통의 그림자와 분명히 다가올 현실의 빈궁함 사이에서 예선은 타협인지 현실적 분석인지 모를 생각을 택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런데 왜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하고 앞날을 두려워해야 한단 말인가?

예선은 억울함의 힘으로 일상을 유지하기로 했다. 지울 수 없는 불안감은 소형 녹음기를 구입해서 갖고 다니는 것만으로 견디면서 회사에 나갔고, 하던 대로 할 일을 했다. 그 결정은 올바른 것으로 보였다. 양 팀장이 밥을 먹자는 식의 제안을 하기는커녕 말조차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흘간은 그럭저럭 마음이 놓였다. 괜한 착각을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나흘째였다.

“예선 씨, 나 좀 볼까요?”

양 팀장이 예선을 부른 것은 점심 식사 시간 직전이었다. 예선은 바쁘다고 하거나 다른 사람과 밥을 먹어야 한다고 둘러대서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거짓말이라는 게 너무 쉽게 드러날 게 뻔한 데다가 양 팀장이 정확한 용건을 말하지 않았으므로 다른 명분을 찾기도 불가능했다.

결국, 예선은 양 팀장이 부르는 대로 복도로 따라나갔다가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주머니에 넣어두고 다녔던 녹음기를 잊지 않고 작동했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약간 거리가 있는 떡볶이 전문점에서 로제 떡볶이 따위를 억지로 먹으며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예선에게, 양 팀장은 슬며시 말했다.

“예선 씨한테 중요한 일을 새로 맡기고 싶은데요.”

“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라 놀라서 되묻자, 양 팀장은 씩 웃었다.

“그렇게 놀랄 거 없어요. 그간 일 하는 거 보고 맡길만 하다고 생각해서 맡기는 거니까.”

“아, 네…….”

“이번에 우리 회사도 로봇 동반자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애정 표현의 기본 패턴과 대사 만 개 정도를 예선 씨가 맡아서 작성해줬으면 해요. 대략 석 달 안에.”

석 달에 만 개라면 절망적으로 많은 양은 아니었다. 그동안 처리한 데이터에 비하면 널널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다. 예선은 은근히 안도했다가, 양 팀장의 다음 말에 다시 긴장했다.

“이 프로젝트는 극소수 몇 명을 빼고 나면 우리 둘만의 비밀이에요. 우리 팀이든 아니든 아무한테나 말했다간 보안 규정 위반이니까 실수하지 않게 조심하시고…….”

보안 규정을 지켜야 하는 프로젝트가 한둘도 아닐 뿐더러 정말 둘만 아는 것도 아닌데 대체 뭐가 낭만적라고 둘만의 비밀이니 어쩌니 하는 것일까? 예선은 양 팀장의 해괴한 감성에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았지만, 일단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네, 조심하겠습니다.”

양 팀장은 그런 예선이 어떻게 보였는지 잠시 그녀를 응시하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특히 정원 씨 같은 사람 가까이 하지 말아요. 이력이 독특한 사람이긴 한데, 알아보니까 무슨 사고를 당한 뒤로 두뇌 개조 수술을 받아서 좀 이상한 사람이라더라고.”

“네?”

딱 한 번 만나본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소리도 이상했지만 그 뒷내용은 더 이상했다. 아예 현실 세계 얘기가 아닌 것 같았다.

“두뇌 개조라니, 그런 게 실제로 있어요?”

양 팀장은 어딘지 모르게 신이 난 듯이 답했다.

“아, 모르시는구나. 연구 자체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된 분야인데, 요즘은 일반적인 외과적 수술로 치료가 불가능한 뇌 기능 이상을 극복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도입하고 있다고 해요. 칩을 쓴다든가 나노머신을 쓴다든가 해서. 그런데 아직 충분히 검증된 영역이 아니니까 주위에서 조심할 필요는 있는 거죠. 실제로 두뇌 개조를 받은 남자가 사고를 일으킨 사례도 있어요. 뭐 꼭 그런 사례라는 건 아니지만 정원 씨 아내도 사고사 했다고 하고.”

예선은 놀라는 한편, 달리 방법이 없어서 두뇌 개조를 택한 사람들을 싸잡아 예비 범죄자로 몰아가는 듯한 발언이 상당히 거슬렸다. 게다가 남이 무슨 치료를 받은 얘기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도 정당하지 않은 일 같았다. 아니, 그건 분명 비윤리적인 짓이었다.

“박주임님이 개조를 받았다는 건 대체 어떻게 아셨어요?”

양 팀장은 태연하게 답했다.

“본인이 무슨 의학 저널인가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수술 체험 수기 같은 거였죠. 무슨, 자기 전문 분야를 자기 몸으로 체험할 줄은 몰랐다나……. 하여튼 요즘은 참 별일이 다 있다니까요.”

뭐가 문제인지 상상도 하지 못하는 듯한 태도로 말하며, 양 팀장은 바퀴 달린 구형 서빙 로봇이 가져온 물컵을 집어들었다. 그러고는 로봇이 테이블 다리에 걸려 버벅이자 발로 로봇 아래쪽을 거칠게 밀어 멀리 떼어놓았다.

예선은 양 팀장의 말과 행동 모든 것에 넌더리가 났다. 대화를 더 나누는 것 자체가 역겨웠고, 한 공간에 있는 것부터 감정적 낭비이자 손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는 괜히 스마트폰을 확인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보기엔 좋은 분 같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잘 관찰해볼게요. 그럼 저는 은행 가볼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예선은 조심하고 늦지 말라는 양 팀장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식당을 나섰다. 그녀로서는 대단히 과감한 저항이었지만 분명 필요한 일이었다. 숨이 막히면 수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듯이 그러지 않고는 죽을 것 같았다. 예선은 바깥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며 걸었다.


새 프로젝트는 예선이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돌아왔을 때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업무 지침과 분장 상황을 보니 무슨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한참 전부터 완전히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정리가 다 끝난 상태였다.

예선은 그 지침과 일정표 따위를 보며 묘한 불쾌감과 두려움을 느꼈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이니 하라면 당연히 하는 게 맞긴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예선이 계획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눈곱만큼도 상정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이라면 그냥 꼼꼼히 잘 짜여진 프로젝트라 생각하고 말았을 텐데, 지금은 그 표를 따라가는 게 양 팀장의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게 너무나 싫었다. 끈적한 뭔가가 살갗 곳곳에 달라붙는 것처럼 불쾌하고 꺼림칙했다.

그러나 예선은 이를 불안감이 만들어낸 착각에 불과하다고 믿기로 했다. 흔히 말하듯이 사적인 감정을 일에 개입시켜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이상 회사에 붙어있어야 하고, 회사에 있는 이상 시키는 일은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는가. 그러니 불안과 공포를 더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예선은 그러면서도 자신이 위험 신호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무엇이 올바른 판단과 느낌인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예선은 생각에도 느낌에도 시달리지 않기 위해 작업에 몰두했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자신을 살린다는 사실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기계학습이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기계학습으로 나아갈 방향을 하나하나 설정하고 다듬는 작업에 애정을 갖고 있었으므로, 로봇에게 인간과 사랑의 감정을 교류하는 언행을 가르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었다. 마치 영리한 아이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것처럼.

그러나 작업을 시작한지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예선은 이게 예상처럼 즐거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정 표현 방식이나 대사를 인공지능이 로봇 신체로 구현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정확하게 묘사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왼쪽 입꼬리가 1밀리 더 올라가는 게 사랑의 표현인가 아닌가 하는 식의 문제는 머리를 터지게 만들었다. 열 개쯤은 겨우 할 수 있었지만 그 뒤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천 배를 해야 한다니, 앞이 캄캄할 지경이었다.

대체 사랑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표출되는 걸까.

예선은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사랑을 요구한 사람은 초등학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대여섯 명 있었다.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그러나 예선은 그들 중 누구의 요구에도 응할 수 없었다. 그들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싫어하던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는 사람도 있다는데, 예선은 전혀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갖지 않은 것을 요구 당할 때마다 난처할 따름이었다.

모두가 당연히 갖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달라고 할 정도로 흔해빠진 게 자기에게 없음을 몇 번이고 확인하니, 예선은 이제 한층 더 암담한 의심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는 사람일지도 몰라.

가만 보면 맞는 생각일 것 같기도 했다. 예선이 나중에 사랑한 사람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가 먼저 사랑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전후한 시기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사랑이 저절로 마구 샘솟는다는데, 예선은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누군가를 끝없이 생각하고 보고 싶어진 적도 없었을 뿐더러 그 흔한 아이돌 한번 좋아한 일이 없었다. 신앙도 없었으며 깊이 애정하고 소속된 단체도 없었다.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만나는 친구가 두어 명 있을 따름이었다.

예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무엇이 부족하다고 진심으로 느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억지로 뭔가를 찾아다닌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까……. 예선은 예전부터 그렇게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인공지능에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 대단히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슬슬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모두가 사랑을 하고 거기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간다. 그런데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그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건 정상이 아닌 게 아닐까. 최소한 이 작업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예선은 양 팀장에게 말했다. 자신이 지금 맡은 작업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니 다른 작업을 할 수 있게 변경해 달라고. 양 팀장에게 말을 거는 것부터 싫은 마당에 자신이 무능하다는 말까지 하려니 자존심을 진창에 패대기치는 기분이었지만, 잘 할 수도 없는 일을 굳이 하겠다고 붙들고 늘어져서 프로젝트 전체의 발목을 잡는 것보다는 못하는 건 못하겠다고 빨리 인정하고 담당한 부분을 적합하게 변경하는 게 훨씬 나았다. 보수를 받고 일을 하는 자라면 응당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게 예선이 가진 직업 윤리였다.

그러나 양 팀장은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작업이에요. 연애 경험이 많은 사람이 한다면 애정 표현 방법 스무 개 정도는 곧장 쓸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게 전부예요. 자기 경험으로 쓸 테니 한계가 또렷해요. 하지만 예선 씨처럼 로봇의 작동 원리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반대로 작동 부위에 적용할 인간의 모습을 관찰하고 로봇에 반영할 수 있을 겁니다. 관찰, 상상, 반영. 예선 씨는 필요한 걸 모두 할 수 있어요. 내가 보증하죠.”

자신만만하게 칭찬하는 모습은 무척 유쾌하고 즐거워 보였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선수의 재능을 혼자 알아본 코치의 표정 같았다. 보기에 따라선 멋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예선은 그 모습이 기괴하게 느껴졌다. 양 팀장이 장담하는 멋진 가능성의 세계에 예선이 느끼는 절망감과 무력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 팀장은 대체 내게서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예선은 무거운 의문에 짓눌렸다.

양 팀장이 좋아하는 것은 나의 무엇일까.

그녀는 한층 더 암담한 기분으로 자리에 돌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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