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찾아온 맛이 때로는 더 아름답다
집 근처에서 전기구이 통닭을 파는 트럭을 발견하면 한 마리 사는 게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간식으로 대충 먹을 수 있는 과자나 빵도 아니니 그렇게 냅다 저지를 순 없어서 지나치는데, 그러자면 반드시 아련한 아쉬움이 남는다. 손만 내밀면 잡을 수 있는 영광과 행복을 하찮은 이유로 떠나보내는 기분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기구이 통닭이 그렇게 엄청난 미식이나 별미까지는 아닌데도 못 먹었다고 이토록 아쉬운 심리는 무엇 때문일까? 나는 이것을 한정된 기회의 마법이라 생각한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드문 기회를 놓치는 게 손해라고 인식되는 것이다. 우리 뇌는 손해에 3배 더 민감하다고 하니, 결과적으로 트럭에서 파는 전기구이 통닭도 3배 더 유혹적인 셈이다. 게다가 다가갈수록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해서 당장 반쯤 포로로 만들고, 지근거리까지 가면 노릇한 불빛 아래 돌아가는 통닭의 모습이 식욕에 뜨거운 불을 지핀다. 식욕이라는 본능을 자극하는 거리의 종합예술인 셈이다. 후각적 유혹으로는 델리만쥬가 악명 높지만, 총점은 전기구이 통닭 트럭이 더 높다. 정말이지, 이렇게 쓰고 보니 근래에 들어 먹지 못했다는 게 너무 통탄스럽다. 맛있는 치킨을 매주 먹었음에도 이상하게 그렇다.
사실 내가 전기구이 통닭을 어릴 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다. 집 근처에 창가에서 전시하듯 통닭을 돌려가며 굽는 호프집이 있었으나 거기서 굽는 닭들은 그냥 오브제로 보일 뿐이었다. 크리스마스 장식품보다 더 감동이 없었다. 코스트코가 대표적 유인 상품으로 로티세리 치킨을 팔기 시작한 이후로 그 거대한 전기구이 통닭이 식탁에 오르는 일이 많았지만 애정하진 않았다. 그건 쌀밥처럼 식량의 영역에 있지 즐기는 식사의 영역에 있지 않았다. 바삭한 껍질도 없으면서 짜고 상당량이 퍽퍽한데다 질리도록 양이 많았기 때문이다. 재수가 없으면 덜 익은 부분도 있었다. 참고로 요즘에는 좀 심심해졌지만 그밖에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내게는 먹다 지치는 단백질 공급원이다.
그러다 전기구이 통닭을 제대로 먹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나와 애인은 서울 중심부인 종로 일대에서 데이트할 때가 많았는데, 하루는 애인이 맛집이라고 그 근방의 전기구이 통닭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곳은 어찌나 오래되었는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가게였다. 그러나 맛은 기대보다 덜했다. 바짝 구운 겉면이 제법 바삭함을 연출하긴 했으나 고기가 비교적 단단하고 따로 양념이 되지 않아서 소금을 찍어 먹어야 했다. 아마 가게의 역사대로 전통식을 지켜온 것이리라. 돌이켜보면 아주 어릴 때 집 근처 치킨집 닭이 이런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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