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 높은 주식 종목은 1주당 1~2%가 올라도 꽤 만족할 수익금을 보인다. 비록 1% 상승이라도 내겐 큰 돈이라 팔아야 할지, 놔둬야 할지 판단을 해야한다. 평일 주식 장 시간대에는 시간적 여유가 그리 길지 않다. 짧으면 몇 초 ~ 몇 십초사이에 의사판단이 이루어져야한다. 결국 1%의 수익으로 남기기로 한다. 그럼 수익금과 주식을 매수한 돈까지 내 것이 된다. 그럼 그렇게 행복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 1%의 수익을 얻은 나는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그 주식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주식이 폭등해서 3~5%가 되어 있다면? 나는 손해보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 몇 만원을 잃은 듯한 슬픔에 잠겨, 몇 시간 전 판단에 괴로워 할 것이다. 반대로 떨어져 있으면 최고점에 판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다시, 그 종목에 대해서 지켜 볼 것이다. 또 오를 것을 기대하면서. 이 때 행복의 기준은 오로지 숫자에 판가름된다.
사실 이렇게 주식을 하는 것이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평균으로 7~10%대의 수익을 기다리지만 나는 꾸준히 10%이상 우상향했던 주식을 1~2%씩 사고 파는 주식을 했었다. 그래도 나름 투자철학이란게 생겼으니 주변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즉, 나의 소신대로 주식을 매수, 매도할 수 있다고 나는 나를 너무 고평가하며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테마주에 너무 쉽게 흔들리기도 했고, 마치 도박 같은 마음으로 급등주에 올라타보며 손해를 보며 살았었다. 그리고 이건 약과였다. 그 것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는..
소신이 깨진 것은 2017년 12월 비트코인을 할 때 부터였다. 주위에서 비트코인으로 몇 억이 생겻다던지, 예전에 사뒀던 비트코인이 올랐다는 그런 말들을 들었다. 그들은 이처럼 과열 되기 전 이미 가상화폐라는 개념을 알고 있었고, 보유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너무 늦었던 단계에 나는 불나방처럼 불에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단지 몇 천원~몇 만원을 소소하게 이익을 추구했던 나는 그 해 겨울, 비트코인의 광기에 파묻혀있었다. 비트코인의 수익은 달콤해 보였고, 금새 부자가 될 것 같았다. 내가 가진 코인은 20~30%가 올랐고, 몇 몇 코인은 100%~200%까지 오르는 걸 눈으로 봤다. 그런데 크게 수익을 올리지는 못했다. 이미 과열된 코인을 고점에서 산 터라 얼마가지 않아 사람들이 매도하기 때문이었다. 원금이 너무 작기 때문에 수익이 나도 수익이 난 것 같지 않은 느낌이 왠지 뒤쳐지는 우울함이 컸었다. 한참 빠져 있을 때는 낮과 밤이 따로 없었다. 그때 막 정부는 비트코인을 규제하기 시작했고, 아마 그 때 그것이알고싶다에도 나왔고, 아마 비트코인 1주가 2500만원의 최정점을 찍을 때 였고, 정제승과 유시민의 토론이 나올 때 였을 것이다. 그때쯤 리플코인을 3700원쯤(?)에 매수한 나는 그것이 고점일 줄은 모르고 계속해서 리플코인 만원이라는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2018년을 기점으로 리플코인은 계속 하락했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리플코인을 몸을 던져 추가매수를 하며 대롱대롱 달려있었던 나는 마음 속으로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영!
차!
영!
차!
이런 비슷한 상황으로 만든 영화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곤경으로 빠뜨렸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 <빅쇼트,2016>다. 이 영화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더 가치를 발휘한다.
은행은 돈이 모이는 곳이며 동시에 상품을 만들고 판매(대출)을 하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은행에서 대출을 한 뒤 부동산을 구매 한다. 이 때 어느 정도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하긴 하다. 그들이 갚을 능력은 있는지, 안정적인 수익이 있는지를. 그러나 어떤 규제도 없이, 우선 대출을 해준다. BBB등급 상품의 쓰레기들에 신용을 붙여 거품을 만든다. 여기선 이 상품을 CDO라고한다. 그러니까 똥이면 아무도 안사니까 똥에 돈을 붙여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낸다. 똥에 거품이 계속 붙어갈수록 사람들의 대출은 많아지고,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아져서 거품이 붙는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이게 이 가격까진 아닌데라는 인식이 많아지면서 곧 그것이 거품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러니까 능력이 안되면서 빚을 진 많은 사람들의 자산이 거품처럼 사라졌고, 그들은 하루사이에 모든 걸 잃게 되었다. 이처럼 붕괴되는건 순식간이다. 마치 후 불면 사라지는 거품과 같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현실이었고 영화 <빅쇼트>는 자칫 다큐같이 흘러 갈 수 있는 소재를 적절한 예시와 탑 주연급 4명을 적절히 배치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 대사 중 "진실은 시와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를 싫어한다" 라는 말은 얼마나 많은 곳에서 진실을 거짓으로 덮는지 말해준다. 나 역시 너무도 쉽게 이상을 그렸고, 왠지 가상화폐 부자가 될 것 같았다.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비트코인에 뛰어 들었다고 할 정도의 사회적분위기였다. 다시 생각해보면 오랜 과거의 튤립시장같은 끔찍한 일이었다.
영화는 계속해서 자신의 판단이 맞는데 시장은 그러지 않는데서 오는 불확실성에 대해 분노한다. 은행은 거짓말로 속였고, 이를 아는 몇 명의 관계자들은 눈을 가리고, 입을 막고, 듣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해서 가난할 것이고, 부자들은 위기를 통해 더 부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또 다른 이름의 CDO상품을 만들 것이고, 자신의 자본을 보호 할 것이고, 사람들은 모두 불나방처럼 다시 달려들 것이다. 또한 정보가 가난한 자에 책임을 돌려 끝내 책임을 지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우한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 시작하며 중국과 관련된 주식시장은 얼어붙고, 공매도와 동시에 외인은 속절 없이 한국주식시장을 떠나고 있다. 확진자는 점점 늘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한 코로나 관련 주식에 돈이 몰려 폭등과 폭락의 반복하는 현상이 계속되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누군가는 돈을 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땀 흘리고 정직한 노동만이 자본의 시대에 정의라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시장의 흐름과 현상에 따라 돈을 벌 수 있는 자본의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군가는 망하는 것에 돈을 걸고, 누군가의 희생으로 돈을 버는 것이 옳지 않다고 무작정 비난 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에서 진실이 아닌 것을 통하거나 비도덕한 것은 정의가 아닌걸까. 자본주의에서 양심은 어떤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존재하는가. 양심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주변 사람을 지킬 힘을 기를 수 있는가. 아니면 양심을 통해 사람들에게 환호받을 수 있는 세상인가?
돈과 사람의 이야기, 영화 빅쇼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