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하고 쓸모 없는것에 대한 찬가 ‘나의작은시인에게’

흩어지는 아름다운 것을 잡을 수 있을까

by 성운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을 돌아보면 안타까움뿐만 남을 때가 있다.

나만 그렇다면 더 슬프고 비참한 일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도 왜 이것밖에 되지 못했는가라는 후횔 품을 거라 믿는다.

그건 당장 어제 술 먹고 저지른 실수도 포함되겠지만.

그래서 어른이 되는 과정은 늘 어렵고 벅차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도 모른 채 뒷사람 발만 보고 걷는 사람들이 대체로 행복이 뭐죠 이게 행복인가요 라고 물어볼 만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살기 때문에 질문은 잠시 접어 두고 그럭저럭 살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낄 때가 가끔 있다. 여러 가지 상황 중에서 삶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것 몇 가지를 발견한다. 이때가 중요한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모자라서 가지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발견할 때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면서 밥 잘 먹고, 일 잘하고, 잘 놀고, 잘 자는 생활만 하는게 아니라, 다양하고 많은 쓸모없는 활동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중 하나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예술이라 생각한다.

예술은 늘 그런 역사와 전통을 이어왔고, 인간임을 증명해주는 역할을 해오며, 인간이란 존재의 의문을 늘 상기시켜주었다.

-우리는 먼 과거의 동굴속 조상의 손바닥의 의미를 모른다.-

우리는 전문 예술인이 아니지만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예술의 혼을 불태울 때가 있다.

악기를 배우거나, 운동기록을 세우거나, 글을 쓰거나, 노래를 하거나 그리고 그림을 그리거나.

또는 많은 이야기를 함축시킨 시를 쓰거나.

이 모든 것은 태어난 직후부터 시작된 인간의 기초적인 활동이었다. 일찍이 두각을 보인 소년, 소녀들은 진로를 정했겠지만, 평범한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했어야 했다.

채소연이 강백호에게 농구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본 순간 농구를 좋아한다고 큰소리쳤던 순간, -누구라도 그랬을 것-

스포츠 재능이 없는 그저 키만 큰 고등학생이었다면, 강백호는 농구부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동네 농구대에서만 나 농구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라고 혼잣말을 하며 농구를 했을 테니 폼은 안 났을 것이다.

작품 속 강백호는 서태웅의 재능에 비교되며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강백호가 농구부에 들어오기 전 선발이었던 그들의 선배는 강백호의 재능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드래곤볼에서 베지터 또한 손오공의 재능을 부러워한다. 손오공은 재능보다 주인공의 버프와 잠재력에 가깝지만, 재능이라고 두고 싶다.

임요환을 이기지 못했던 홍진호도 많은 이들이 부러워했을 승리자였다.

그렇다. 재능은 상대적이며, 많은 사람들 중에서 두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발견되어야 하며, 소중히 다뤄져야 한다.

많은 영화에서 주인공에게 재능이라는 보석을 발견하도록 장치를 만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주인공만의 길을 개척하는 형태의 익숙한 설정에 스승들이 나온다.

- 빌리 엘리어트에서 나온 츤데레인 스승이거나

위플래쉬처럼 모든 걸 쏟아붓게 하는 강력한 스승이라고 볼 수 있겠다 -

강압적인 교육으로 성적을 끌어내더라도 그것이 학생에게 최선의 방법이었을지, 아니면 더 나은 교육법이 있었을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의문을 남기는 중이다. 늘 그래 왔듯이 정답은 없다. 어려운 문제다.

타인의 재능을 두고 향하는 감정은 하나로 정의될 수 있을까?

질투? 존경심? 자기부정? 진심 어린 응원? 안타까움? 부러움? 놀라움?

이 영화에서 내가 아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다 쓴다면 이런 단어들일 것이다.

-아마 여기서 표현하고 싶지만 적지 못한 단어를 누군가 적어낸다면 난 그 누군가를 질투할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선 불편함을 주지만, 마음속 한쪽 구석에서는 이해가 되는 질투심과 존경심 가득한 한 인간의 고백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세상에서 읽히지도 못한 채 사라지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 의미에서 사라지는 문장을 손으로 잡은 리사는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재능을 끄집어내기 위해 미성숙한 교육법으로 나약한 상대로부터 이득을 취했던 리사는 아동의 노동을 착취한 범죄자였다.

자신의 가정과 아이들에게 소홀하고 끊임없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예술을 택한 리사는 불완전한 어머니였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자신의 작품으로 발표했던 사라는 작가가 될 수 없었다.

환상적으로 복잡하고 착잡함이 남게 한 리사의 행동과 사고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 걸 수 있을까?

오늘날의 수 없이 사라지는 지미를 우리는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지켜내는 것이 그만큼 가치가 있는 일일까?

지미의 아버지처럼, 예술은 생계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가치를 둘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하는게 현실이다. 진정으로 아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성애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왜 인간들은 이토록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걸까

패터슨은 왜 버스를 몰면서 시를 지었을까

자신의 시를 부끄러워하면서 쓴 윤동주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나온 할머니는 왜 그런 비정상적인 현실에서도 시에 집착했었을까


이 영화가 조금은 답을 준 듯 하다.

"Anna is Beautiful.”
“Beautiful enough for me."

애나는 충분히 나에게 아름답다.


나에게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애나는 무엇일까

내가 사랑하는 무용하고 쓸모없는 것들도 충분히 아름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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