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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Jun 15. 2022

여름이었다

여름 장마가 유난히 길게 느껴질 만큼 온몸이 땀으로 젖을 만큼 습도가 높았다. 제히가 막걸리랑 전이 생각난다고 했을 때 마침 남은 재료로 해정이 전을 지지기 시작했다. 별 다른 재료 없이 김치로만 만든 평범한 김치전이었다. 막걸리를 사기 위해 두 병 또는 세 병을 묻는 제히는 해정의 손가락 세 개를 보고 그럼 네 병이라 말하고 길을 나섰다.

제히가 자주 가던 편의점엔 항상 참고서를 보고 있던 알바생이 있었다. 알바생은 제히가 자주 사던 술을 기억하는 듯 말을 했다. 

“아 한국막걸리가 방금 다 나가서 지금은 스타먹걸리밖에 없어요”

제히는 한국막걸리를 유독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막걸리마다 특유의향을 고집하는 데 있어 한국막걸리를 따라 할 막걸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제히는 스타막걸리를 네 병들고 와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한국막걸리가 맛있는데. 다음에도 이런 일 있으면 말해줘요 미리 사두게”

그리고는 제히는 명함을 꺼내서 알바생에게 주었는데 마치 번호를 받기 위해 작업을 하는 듯하다고 생각할 듯싶었다. 괜히 명함을 주면서 오버했나라는 생각에 제히가 편의점을 나오고 현관을 열었을 때 해정이 다섯 전째 굽고 있었다. 대학교 때부터 함께 자취한 제히와 해정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으니,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서로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 알 수 있었다.

“나 그 편의점 알바한테 연락처 줬다.”

그 말을 들은 해정이 거의 전을 뱉다시피 기침을 했다. 

“으 튈 뻔했어”

“응 내가 다 먹으려고 그런데 무슨 말이야 그런 취향이었어?”

“이거 봐 스타막걸리잖아 한국막걸리 사야 하는데 오기 전에 이미 다 나갔대”

“너도 참 다른 데 가면 되지”

“귀찮아 걷는 거 너무 싫어하는 거 알잖아”

제히가 유일하게 싫어하는 것 하나는 여름에 걷는 것, 겨울에 걷는 것이었다. 어떻게 살 수 있어라는 말을 들을만한 싫어하는 것들이었다. 더더욱이나 한국에서 여름, 겨울을 빼면 무슨 계절이 남는단 말인가 해정은 처음에 그저 제히의 불만으로 여겼다. 그만큼 걷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강조해서 비유한 것일 테니 하면서 말이다.

“여름 오면 또 어쩌려고. 지금은 5월이니까 괜찮아?”

“응 힘들긴 한데 5월이면 아직은 괜찮지. 이제 6월 되면 다시 택시 타고 다닐 사람 찾아야겠어”

“막걸리는 그래도 사더라”

“이게 바로 내 에너지거든”

제히가 요구한 조건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경로로 다닐 택시를 구하는 것이었다. 물론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있었지만 택시를 구하는 것은 꽤 쉬운 일이었다.

출근시간 9시 그러니까 새벽 6시에 택시를 타는 것 그리고 혼자선 아무리 제히라고 해도 부담될 터이니 동승자 한 명을 구하는 것이 제히가 여름과 겨울을 대비하는 가장 큰 숙제 중의 하나였다.

해정이 보기에 제휴는 그 누구보다 부지런했으며 그 누구보다 게을렀던 양면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까 걷지 않기 위해 10분이라도 더 자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현대인들이 아직 현실을 부정할 시간인 새벽 6시에 출근길을 나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제히가 이렇게 다니는 이유는 보통 지하철 괴담이었던 치한의 이야기이거나, 지하철의 가득한 사람 때문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여름과 겨울 외에도 택시를 타야 했다. 그래서 해정은 늘 이건 제히가 여름과 겨울에 걷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을 맺곤 했다.

막걸리를 4병째 먹을 때, 꽤 취했는지 제히가 울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여름이 오는 게 너무 싫다는 것이었다. 해정은 그렇게 울면서 말하면 여름이 안 오냐라고 말을 했는데도 제히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해정은 제히가 계속해서 슬퍼하자 불현듯 무슨 글이든지 뒤에 여름이었다는 말을 붙이면 꽤 있어 보인다는 말을 하면서 여름을 싫어하지 말고 여름이었다고 혼자 생각해보라고 말을 했다.     

“뭘 붙여?”

“아무 말이나 하고 여름이었다 붙여보라는 거야”

“말로? 하는 거야? 술 취한다. 덥다, 장마다. 여름이었다.”

“아니 글로 쓰라던데 말로 하니까 별로네.”

제히와 해정은 가지런히 누워 천장을 보며 말했다.

“이번 여름에도 별 탈 없이 행복하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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